마하(摩訶)
산스크리트(Sanskrit)어 마하(maha)의 음(音)역으로 크다, 많다를 뜻하는 말입니다.
반야(般若)
산스크리트(Sanskrit)어 프라즈냐(prajna)의 음(音)역으로 생명 내부의 움직임 속에서 절로 솟아나는 지혜. 법의 이치를 깨달은 최상의 지혜를 뜻하는 말입니다. 어쩌면 원초적인 지혜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바라밀다(波羅蜜多)
산스크리트(Sanskrit)어 파라미타(parammita)의 음(音)역으로 완성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파람과 이타를 따로 떼어서 해석하면(param + ita)가 되고 깨달음의 저 언덕에 이르는 상태라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두가지중에 어느 것을 택하더라도 본문의 뜻에 크게 위배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심(心)
산스크리트(Sanskrit)어 흐리다야(hrdaya)의 의(意)역으로 심장 또는 핵심이라는 뜻이 됩니다.
경(經)
산스크리트(Sanskrit)어 수트라(sutra)의 의(意)역으로 성전 또는 경전이라는 뜻이 됩니다.
우리말 경전, 불교경전



‘반야 중도(中道) 해탈’의 세계를 말씀하신 『반야심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대장경에 보면, 『반야심경』은 일곱 가지 번역본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많이 봉독되는 경은 현장 스님의 번역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것을 가장 많이 독송해 왔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도 현장 스님의 번역본을 가지고 설명 드리겠습니다.
경전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경의 제목이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본래 현장 역에는 『반야바라밀다심경』이었습니다만 중간에 봉독되면서 경 제목의 처음에 ‘마하’ 두 자를 더 붙여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으로 정착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열 자의 제목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부터 설명하겠습니다.
(1) 마하
마하(Maha-, 摩訶)는 범어로 크다(大)는 뜻입니다. 마하의 크다는 뜻은 그냥 단순히 크다는 뜻이 아니라, 무한한 의미로서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절대적인 의미로서 크다는 것이며, 영원한 의미로서 큰 실상이 바로 ‘마하’입니다. 다시 말하면 공간적으로 무한하고 시간적으로 영원한 의미를 마하라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2) 반야
반야(prajna-)는 지혜라고 번역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세속적인 지혜가 아니라 진리를 깨달은 지혜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반야를 최상의 지혜(最上智)라 하며 가장 완전한 지혜라고도 합니다. 우주와 인생의 참다운 진리를 체험한 진실한 지혜를 반야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야는 ‘해탈’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지혜입니다. 그리하여 반야를 ‘해탈지견(解脫知見)’이라고도 합니다.
인간이 어리석은 고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이 반야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반야는 그대로 생명의 실상을 체험한 지혜이며, 우주의 진리와 하나 된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이 반야의 광명이 나타났을 때 인간의 온갖 괴로움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고뇌는 이 반야가 완전히 구현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리하여 반야에 대해서는 그 가치와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3) 바라밀다
바라밀다(paramita-, 波羅蜜多)는 피안의 세계에 간다(到彼岸)는 뜻입니다. 해탈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말이며 극락의 세계에 친히 도달한다는 뜻이 바라밀입니다. 이것을 조금 깊이 해석하면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이루는 것이며 무엇이든지 새롭게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심경(心經)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줄여서 말할 때 『반야심경』이라 하고 더 간단히 말하면 ‘심경’이라 합니다. 여기에 쓰인 ‘심(心)’자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심장(心臟)의 뜻입니다. 즉 ‘반야바라밀다의 핵심(核心)적인 경전이 『반야심경』’이라는 것입니다.
경(經)이란 범어의 수트라(sutra)로서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을 다 경이라 합니다.
이 『반야바라밀다심경』이란 열 자의 제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야’입니다. 다른 말은 다 반야를 수식하는 말이고 반야의 역할과 공덕을 나타낸 말입니다. 그러므로 중심은 반야이고 마하와 바라밀다(여기서 ‘다’는 의미에 해당, 보통 어미의 ‘다’를 생략하고 ‘바라밀’로만 쓰는 경우가 많음)는 반야에 대한 서술어입니다.
반야는 크고 깊고 영원하고 빛나고 우렁찬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반야는 바로 진리요, 지혜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을 예로부터 실상반야(實相般若), 관조반야(觀照般若), 문자반야(文字般若)라 했습니다.
반야는 근본 마음, 밝은 마음, 항상스러운 마음, 무엇이든지 다 이룰 수 있는 마음입니다. 반야는 곧 청정심(淸淨心)이고 해탈심(解脫心)이고 본래심(本來心)입니다. 이러한 반야는 모든 공덕을 성취해 나가고 일체의 일을 다 이루어 가고 있으며 중생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 나라를 건설합니다. 이렇게 한없는 공덕을 쌓아 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바라밀이라 합니다. 바라밀이란 새로운 세계로 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장소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을 뜻합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어두운 자기 자신이 밝아지는 것이 바라밀입니다. 이리하여 달라지고 변하고 새롭게 이루어지는 것은 다 바라밀입니다. 그런 까닭에 한없이 크고 밝은 마음으로 해탈세계를 이루어 가는 것이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 반야의 지혜로 행복을 성취하는 것이 반야바라밀입니다. 반야는 늘 새로운 정신입니다. 반야는 창조의 정신입니다. ‘새로운’이란 창조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야 합니다. 창조적인 활동을 계속해 나갈 때 진정한 바라밀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될 때 대승불교의 최상의 해탈이 되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창조적 행위가 없는 해탈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정신에 의한 새로운 창조를 이룩하기 위하여 『반야심경』을 깊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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