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닫고 차가운 복도에 주저앉아 그 문자를 다시 읽었습니다.
아내의 문자는 짧았지만, 평생을 쌓아온 제 성벽을 단숨에 무너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비밀번호 당장 바꿀 거니까 다신 올 생각 마. 그리고 조만간 변호사 사무실에서 연락 갈 테니 피하지 말고 받아.]
'다신 올 생각 마.'
20년의 세월이 단 몇 글자로 부정당했습니다.
내 아이들이 숨 쉬고, 내 손때가 묻은 그 집이 이제는 제가 발을 들일 수 없는 금지된 구역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복도 벽에 머리를 짓이기며 신음했습니다. 짐 가방 하나에 담긴 제 인생이 너무나 가벼워 눈물이 났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도망치듯 집 근처 모텔로 향했습니다.
모텔 방의 눅눅한 침대 시트에 몸을 던진 뒤, 떨리는 손으로 아이들에게도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이들도 이제 알 건 다 아는 나이였기에,
숨기는 것보다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도리라 생각했습니다.
[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엄마 들어올 때까지 둘이서 밥 잘 챙겨 먹고 학교도 거르지 말고 잘 다니렴. 아빠가... 할 말이 없다. 정말 미안하다.]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읽었다는 표시만이 제 가슴을 더 무겁게 짓눌렀죠.
눅눅한 방 안에서 담배 찌든 내를 맡으며 며칠을 죽은 듯 보냈습니다.
아내가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다는 소식을 건너 들은 뒤에야,
저는 서둘러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짜리 허름한 원룸을 계약했습니다.
창문을 열면 옆 건물의 차가운 잿빛 시멘트 벽만 보이는,
볕조차 한 뼘 들지 않는 감옥 같은 방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비로소 제 인생의 진정한 몰락을 실감했습니다.
그곳에서 한동안은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았고, 오직 입안을 맴도는 지독한 소주 냄새와 자책만이 제 양식이었습니다.
며칠째 씻지도 않은 채 천장의 얼룩을 바라보며 누워 있다 보니,
가끔 O과장이 소주 한 병과 안주거리를 들고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는 제 곁에서 이런저런 회사 소식과 하소연을 늘어놓으며 함께 술잔을 기울여주었죠.
유일하게 저를 찾아주는 그의 존재가 그나마 숨을 쉬게 했지만,
제 자리를 메우느라 바빠진 탓인지 그의 발길도 점차 뜸해졌고 결국 연락조차 끊겼습니다.
지독한 고독 속에 홀로 남겨진 어느 날 오후,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70대 후반의 장모님이었습니다.
아들이 없던 장모님은 저를 처음 본 날부터 "우리 집에 복덩이 아들이 들어왔네" 라며 친아들처럼 아껴주시던 분이었습니다.
김치 한 포기를 담가도 "우리 O서방 좋아하는 거네"라며 먼저 챙기셨고,
제가 승진했을 때 당신 일처럼 기뻐하며 우시던 그 따뜻한 음성이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O서방... 자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우리 딸이 자네 믿고 산 세월이 얼마인데...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나..."
흐느끼는 노인의 목소리에 저는 방바닥에 엎드려 짐승처럼 울었습니다.
"어머니...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텅 빈 방을 바라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혼 소송, 상간남 소송... 이 수많은 싸움 끝에 내게 남는 게 뭘까.'
'뉴스에서 보던 50대 고독사가 바로 이런 거구나. 내가 여기서 숨이 끊어져도 며칠은 아무도 모르겠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막막한 고민과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소장에 대한 불안감 끝에,
'차라리 이대로 죽어야 하는 건가' 하는 깊은 회의감이 저를 집어삼키고 있었습니다.
눅눅한 방바닥에 누워 천장의 얼룩을 보고 있으면, 그 얼룩이 마치 저를 집어삼키려는 블랙홀처럼 느껴졌죠.
하지만 이대로 죽기엔 억울했습니다.
아니, 죽더라도 내 자존심 한 조각은 지키고 죽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래, 일단 전문가를 만나보자.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순 없지."
저는 며칠 만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씻고, 구겨진 셔츠를 다려 입었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법조타운 근처의 변호사 사무실을 수소문했습니다.
낯선 사무실 문을 열 때의 그 수치심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치부를 낱낱이 기록한 서류를 내밀며 상담을 받는 내내, 변호사의 무미건조한 눈빛이 제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정적만이 흐르는 변호사 접견실에서 저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습니다.
제 상황을 훑어보던 변호사는 아주 현실적이고 냉정한 진단을 내놓았습니다.
"흠... 상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상대방 남편 쪽에서 이미 완벽하게 증거를 수집한 상태예요. 게다가 아내분께서도 굉장히 강경한 입장이십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싸움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최대한 재산 분할과 위자료 규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봅시다. 지금부터는 감정을 버리고 철저히 계산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말은 제 가슴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재산 분할과 위자료를 깎기 위해 아내와 진흙탕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이 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죠.
빌딩 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눈부신데, 제 인생만 잿빛 시멘트 벽에 갇힌 기분이었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을 나서고 터덜터덜, 소주 한 병을 사 들고 돌아오는 길이었죠.
골목 어귀, 가로등 불빛 아래 낯익은 실루엣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엔 제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시작점,
하지만 그토록 증오하면서도 잊지 못했던 그녀가 서 있었습니다...
"아니...당신이 어떻게...니가 어디라고 여길 찾아와!!!"
그녀가 찾아왔나요?
그녀는진짜 님을 섹파가 아닌 사랑으로 느낀건가요?
과거 어느 TV드라마에는....불륜을 저지른 남,녀가 결국은 부부가 되어 잘사는 내용도 있긴했는데~~~
법적처리만 잘되면, 그리고 님이 취업적인 문제만 잘 해결된다면 그녀와의 삶도? 굳이 결혼안해도 나쁘진 않을거 같은데...
물론 이런일 있으니 서로 보기싫다 너때문이다 등등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안보는게 낫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사연도 기대해주세요.
반전이네요.....
남자 고추가 튼실한가?
앞으로 이어지는 사연도 기대해주세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대요.
다음 7부에서 밝혀지게 됩니다. 기대 많이 해주세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이제 막바지에 들어서는거 같은데 부디 좋은? 그나마 다행?으로 결말이 잘 난 스토리이길 바래봅니다
따지고보면 일 터졌을때 숨거나 피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어찌보면 그건 무책임 한겁니다
사고의 중심에 있는 본인이 나서서 적극해명하고 와이프에게 더 빌고 달래거나 가정이라도 지켜보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런 모습이 아이들한테 좋지 않게 비출수는 있지만, 그래도 아빠가 우리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저런 노력이라도 하는구나란 생각을 할테니까요
주변에 몇몇 좋지 않게 이혼하는 사례들을 보아왔고, 또 저정도면 이혼하는게 맞는거 아니야? 싶을 정도인데도 끝까지 가정을 잘 지키는 사례가 있더군요
그 차이의 중심엔 사고를 친 사람, 상간남이나 상간녀라 불리우는 그 사람들의 대처방법에 있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설마 마지막에 픽션!이라고 끝나는건 아니겠죠? ㅎㅎ 암튼 잘 보고있습니다. 다음편도 기대되네요
말씀하신 대로 사건의 끝에서 당사자가 보여주는 책임감 있는 태도야말로 관계 회복의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점에 깊이 공감합니다.
피하는 것이 아닌, 정면으로 마주하고 진심을 다해 빌고 달래는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고도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네요.
많은 분이 궁금해하시는 결말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이 이야기는 결코 허구가 아닙니다.
제가 직접 겪었던 일들이며, 그렇기에 마지막에 "사실은 픽션이었습니다"라고 허무하게 끝을 맺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수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기록하다 보니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드라마틱한 각색이나 묘사가 들어갔을 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사건과 감정의 흐름은 모두 제가 살아온 삶 그 자체입니다.
이제 이야기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 폭풍 같은 시간 끝에 제가 어떤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끝까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성어린 댓글 감사드립니다.
매번 추천도 눌러주시고 몰입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다음 사연도 기대 많이 해주세요.
그러게요..인생이 참 파란만장하군요...
상간녀가 어떻게 알고 찾아왔나요 ㅎㅎ 궁금합니다 ㅎㅎ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매번 이렇게 기대 많이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과찬이십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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