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집, 아내가 떠나며 내뱉은 "처참하게 벌 받을 줄 알아"라는 저주는
거실의 냉기보다 더 서늘하게 제 몸을 감쌌습니다.
하지만 진짜 지옥은 아내가 나간 직후가 아니라,
그날 오후 정적을 깨고 들려온 아이들의 발소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현관문 도어락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평소라면 "다녀왔습니다"라는 활기찬 인사와 함께 가방 던지는 소리가 들려야 할 시간이었지만,
그날은 달랐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큰 아들과 작은 딸은
거실 소파에 넋을 잃고 앉아 있는 저와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내용증명 서류를 번갈아 보았습니다.
아내는 집을 나가면서 아이들에게 이미 모든 사실을 알리는 장문의 메시지를 남긴 모양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아빠, 엄마 어디 갔어?"라고 물었을 아이들이었지만,
그날 녀석들은 저를 투명인간 취급했습니다.
아들은 제 곁을 지나치며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고,
딸아이의 눈망울에는 슬픔보다 더 깊은 경멸이 서려 있었습니다.
차라리 저를 때리거나 소리를 질렀다면 마음이 편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선택한 건 '철저한 무관심'이라는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가정의 평화는 유리창이 박살 나듯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습니다.
주방을 바라보면 주말마다 함께 웃으며 식사하던 온기가 가슴을 찔렀지만,
이제 그 공간은 오로지 정적과 원망으로만 가득 찼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차려놓은 밥상에 손도 대지 않았고,
제가 말을 걸면 벽을 보듯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집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라,
매시간 제가 저지른 죄를 복기해야 하는 고문실과 같았습니다.
연차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회사에서의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처참했습니다.
O과장이 조심스럽게 건넸던 경고는
이미 현실이 되어 사무실 구석구석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죠.
사무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수다스럽던 여직원들의 웃음소리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결재판을 들고 팀원들에게 다가갈 때마다
그들은 모니터 속으로 고개를 파묻으며 저와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피했습니다.
20년 넘게 청춘을 바쳐 일궈온 내 자리가
하루아침에 가시방석이 되어버린 그 굴욕감은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결정타는 상무님의 호출이었습니다.
긴 세월을 함께 일하며 형님, 동생 하던 분이었지만,
그날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비즈니스보다 더 차가웠습니다.
"흠... 소문 다 들었어. 상대가 거래처 여직원이라며?"
"상무님... 죄송합니다. 제가 면목이 없습니다."
"지금 밖에서는 난리야. 자네가 직위를 이용해서 '위력에 의한 간음'을 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어. 사실이야?"
"절대 아닙니다! 상무님, 그건 오해입니다. 서로 감정이 있었고..."
"오해든 아니든 상관없어. 자네도 알잖아. 얼마 전 미투 운동 이후로 회사 분위기가 얼마나 예민한지. 그때 OO팀 O이사가 한순간에 파면당하고 회사가 발칵 뒤집혔던 거 잊었나? 아직도 그 여파가 가시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터지면 회사는 자네를 지켜줄 명분이 없어."
저는 절박하게 그의 소매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상무님은 불결한 것을 본 듯 제 손을 서늘하게 밀쳐냈습니다.
그의 눈빛에는 오랜 동료에 대한 안타까움 대신,
조직에 해를 끼치는 암 덩어리를 도려내려는 냉정함만이 가득했습니다.
"방법이 없어. 상대방 남편 쪽에서 회사로 정식 항의 서한이라도 보내면 피차 얼마나 곤란해지겠나? 사장님도 이미 인지하셨네. 회사 망신시키지 말고... 조용히 정리하는 게 자존심 지키는 길 아닌가 싶어. 인계는 일단 자네가 아끼던 O과장한테 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권고사직이었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가족사진, 손때 묻은 명패,
그리고 내가 기획했던 수많은 프로젝트 서류들이
한순간에 '치워야 할 쓰레기'처럼 보였습니다.
20년의 세월이 단 10분 만에 박스 하나에 담겼습니다.
짐을 챙겨 복도를 지나갈 때, O과장이 다가왔습니다.
쓰라린 마음으로 업무를 인계하는 제게 그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부장님... 아니, 형님. 정말 마음이 안 좋습니다. 힘내십시오. 제가 부족하지만 형님 빈자리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인계받은 일들도 실수 없이 마무리 잘 할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그의 응원이 고마우면서도,
내가 일궈온 이 모든 것이 그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은 참담했습니다.
퇴사하는 날, 흔한 송별회 하나 없었습니다.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고 쓸쓸히 짐을 싸 들고 나오는 길,
O과장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오며 제 손을 꽉 잡았습니다.
"형님, 회사를 관두시더라도 우리 형님 동생으로 계속 잘 지내야 합니다. 연락 자주 드릴게요."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은 사내의 위엄은커녕,
길가에 버려진 젖은 종이박스처럼 한없이 초라했습니다.
회사를 나와 차 안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텅 빈 집으로 돌아가 캐리어에 대충 옷가지와 필요한 것들을 쑤셔 넣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미안해. 내가 집을 나갈게. 당신이 들어와서 애들 좀 잘 부탁해. 번호 키 비밀번호는 그대로야.]
현관문을 닫고 차가운 복도로 나서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습니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아내에게서 바로 답장이 온 것이었습니다.
"어...?"
예상치 못한 빠른 반응에 저는 숨을 멈추고 화면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아내의 답장은...
제 이야기가 점점 읽으시기가 불편해지는건가 하는
염려가 많이 됩니다.
많은 격려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시작했는데 두서없이 흐지부지 결말을 내버리면
그것도 매너가 아닌거 같아서요.
저도 매일매일 지난 아픔을 상기하며 글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왕 시작한거 제대로 써내려가 보겠습니다.
댓글 너무 감사드려요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양날의 검이라 생각합니다.
매일매일 좀 길게 쓴다고 하면서 끊었던 게
어찌어찌 그렇게 문맥이 흘러가고 있는 듯 합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려요.
제가 이전글까지만보고 오바해서 적은건 아닌지...
회사에까지 영향이 갔네요...음....
같은 업계에 까지 소문나는(났던)건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휴우우우~
차라리 가족이 모두 떠났다면 그나마 조용했을건데
힘이 되어야 할 가족이 오히려 가장크게 힘을 들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니~
아뭏든.. 요새 유부녀/남들은 100퍼는 아니라도 상당수가 애인, 아니면 만나는 사람 있다고 하는 세상에서
님이 재수가 없었다, 아니면 님은 애인, 만나는 사람 만들 처지가 아니었는데 과욕을 부리다
벌받았다 정도로 생각해야할거 같습니다~~~~~ 뭐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전글에서 적은바와 같이 엄연히 외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외도없이 성실히 살아가는것 처럼 사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매번 제 글에 관심가져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힘들때 지켜주는게 가족이지만 간통이라는게 사실 가족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지니 어쩔수 없겠지요.
실직이던 뭐던 힘든건 힘든건데 사실 그때 의지가 되어 주는 인간관계라는게 없다는 사실이 힘든거죠.
그런거 한번 겪고 나면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때문에 멘탈이 많이 흔들립니다.
'그깟'떡 때문에 너무 많은걸 잃으셨군요. 그 후임 과장님은 덕분에 승진에 좋은 기회를 얻었겠네요.
그래도 얼굴 마주하고 고마운 얘기를 해주기 힘들었을텐데 제일 승자이면서 그릇이 괜찮은 후배분이네요.
앞으로 이어지는 사연도 잘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재미' 있게라는 말은 못쓰겠지만 지나간 일이니 훌훌 털어 버리시길 빕니다.
뭔좋은애기라고 ㅋㅋ
몇부작인가요 ?
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몇 부작을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대략 8부까지 진행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정도되면 O과장도 손절했을거같은데, 사이 좋았나보네요 ㅎㅎ
재미있는데 어서 다음화 ㄱㄱ ㅎㅎ 살짝 늘어지는 감이 있는거같습니다 ㅎㅎㅎ 화이팅
결말이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만약 제 글이 끝나면 저도 많이 공허하고 할 거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니겠지요...
격려 댓글 감사드립니다.
근데 권고사직인데 업무인계 안해줘도 되는거고
또는 이미 갈때까지 갔는데 위력에의한 간음이 아님은 법적으로 쉽게 입증이 가능하니 회사라도 붙들어야되는거 아닌가요
아시다시피 회사마다 문화가 다르고 그 때 당시의 상황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작가님! 섹스 이야기도 좀 나왔으면 합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이야기를 안타까우면서도 매우 흥미롭게 기다리는 저의 마음이 뭔가 혼란스럽네요
아닙니다. 이제는 지나간 일이니까 저도 끄적거리며 소회를 풀고 있습니다.
댓글 너무 감사드립니다.
우와 전개가 빠르네요
다음 내용이 궁금합니다.
설마 남편분 퇴직금도 다 토해 놓으라 하지는 마세요.
6부 업로드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 많이 해주세요.
댓글 감사드려요.
현기증 납니다 몰아서 보고 싶네요
죄송합니다. 저도 하루하루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여서요
댓글 너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사연도 기대 많이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휘몰아치는 필력 무엇?
격려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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