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프로야구란 서울과 항구도시를 거쳐
내륙의 대도시에서 성행한 스포츠 입니다.
당시 충청도는 강원도와 함께
대표적인 야구의 불모지 였습니다.
1983년 청주 세광고에 진학한
야구특기생 학생은
당시 선배이던 잘치고 잘던지는
야구 천재 송진우의 활약으로
창단 29년만에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합니다.
하지만 송진우가 졸업을 하자
세광고는 야구 변방으로 물러나게 되고
전국대회 4강에 한번도 들지 못한 세광고 3학년들은
야구 특기생으로 대학입학도 못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졸업후 갈곳이 없는 이선수를
당시 빙그래 배성서 감독이
입단 테스트 후 월급 45만원짜리 배팅볼 투수를 시킵니다.
배팅볼 투수는
배팅볼 투수이기는 했지만
세광고에서 야구를 가장 잘했던 내야 유망주여서
당시 빙그레 코칭스텝들의 이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연봉도 600만원으로 오르고
1987년에는 정식선수로 등록을 합니다.
정식선수로 등록이 되고
2군에서 프로수업을 받던중
시즌 개막 한달뒤 당시
빙그레 유격수 이광길 선수
(SK. NC. 최강야구 코치) 가 부상을 당하자
그 자리를 이선수가 훌륭하게 매꿔주었는데
규정타석 미달이긴 했지만
2할 7푼의 타율과 8홈런 으로
1988년 시즌에는 풀타임 주전 유격수가 됩니다.
바로 지금도 '홈런왕' 하면 떠오르는 타자 .
장종훈 선수 입니다.
풀타임 주전 첫해 KBO 유격수 골든 글러브를 차지하고
이듬해 부터 빙그레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일원으로 성장 하게 됩니다.
1990년 28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유격수로는 최초 홈런왕-타점왕이 됩니다.
그리고 1991년에는 포지션을 1루수로 이동하고
각종 신기록을 달성 합니다.
타격부문 5관왕(최다안타, 홈런, 득점, 타점, 장타율)
최다안타 신기록(160개)
최다홈런 신기록(35개)
프로야구 최초 100타점 돌파(114타점)
사상 첫 100득점 돌파(104득점)
20-20클럽 달성
골든글러브(지명타자 부문)
하지만 1994년 팔꿈치에 공을 맞아 부상을 당하게 되고
배트 스피드가 감소하면서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더군다나 이시기가 빙그레 전성기를 같이 이끌었던
이정훈, 이강돈 선수의 에이징 커브가 시작되었던 시기라
https://yt723.org/index.php?mid=community2&document_srl=81247349
투수들이 장종훈을 집중 견제하는 양상으로 이어졌고
빙그레의 자랑이던 다이너마이트 타선은 사라지게 됩니다.
1995 시즌에는 고질적인 팔꿈치 통증이 지속되자
수술을 하고 복귀한 시즌이였는데
부상에서 회복한 장종훈은
타율 0.326 홈런 22개 78타점 출루율 0.424(1위)
장타율 0.562(1위)를 기록하면서 부활 합니다.
그후 1999년도 에는 한화이글스
한국시리즈 우승에 큰 공을 세우며 (시리즈 7타점)
2005년에 현역 은퇴를하게 됩니다.
장종훈 선수는 빙그레에서 유격수로 4시즌을 뛰었는데
너무 뛰어난 활약으로 이글수 유격수 중 통산 WAR 1위 라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나가 우승한 적이 있었군요. 2000년대에는 없죠? 롯데보단 낫네
1992년 한국시리즈 에서 롯데가 빙그레를 꺾고 우승했죠 ^^
요즘얘들이야 한화가 매년꼴찌를하니까 못하는팀으로알고있는데
옛날엔 강팀이었습니다 06년도엔 준우승도하구요~
더심각한건 롯데입니다. 롯데는 정규시즌우승한적도없어요 ㅋㅋ
장종훈 선수 인성 좋기로도 정말 유명했다고 하내요 ㅎ
와 장종훈 선수가 까딱잘못하면 빛을 못볼뻔 했네요
이만수 장종훈 이승엽으로 이어지는 슈퍼스타 홈런왕계보가 지금은 끊긴듯요 중간중간 심정수 이대호 등등 있지만 홈런와 계보는 저 3명인듯요
덕분에 90년대 황금기 프로야구 추억을 떠올리네요
유니폼 되게 귀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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