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피습 당할때 김재규가 정승화 불렀고 이때 김재규가 정승화랑 같이 육본으로 이동하여 사실은폐하고 계엄하자고 난리침...그때 간신히 살았던 김계원 비서실장에 의해 전부 탄로...계엄이 되고 전두환이 합수부장이 되고 군인사권으로 정총장과 부딪힘..대표적 수경사령관 노태우 안해줌..정총장이 결국 하나회 숙청으로 동해방어사령관으로 전두환 좌천시키려 하자....박정희 피습 당시 정승화도 같이 있으니 내란방조로 몰아서 체포하는 과정에서 12.12 일어남
또냐 · 2023.12.10 07:59:12
원래 보안사령관은 서열이 낮은데 줄줄이 죽고 잡혀가는 바람에 2위가 돼서 미친 짓을 했죠. 정승화가 박정희 죽일 만큼 배짱이 있었으면 병신같이 당했겠어요?
전두환이 너무 나대니까 좌천시키려다 당한거죠...그리고 하나회가 나중에는 엘리트 급의 모임이 되지만 전두환 때는 성적도 안 좋은 찌질이 병신들 모임이었고 무시 당해서 쌓인게 많은 것들이었죠
제임스본드 · 2023.12.10 09:21:31
간만에 보는 좋은 질문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지금 사람들의 관점에서 명분없는 쿠데타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느냐가 핵심입니다. 안타까운 건 지금까지 12.12에 대한 많은 시각들 중에서 당시 군부의 관점에서 본 시각은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점에 대해 말씀드려보면.... 전두환, 노태우 이후의 세대는 정규 육사 출신으로서 체계적인 군사교리와 훈련을 받은 세대입니다. 그런데 그 이전 세대들은 체계적인 장교 양성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아니라 해방과 6.25 전쟁통에 대충 훈련받고 장교로 임관하여 주먹구구식으로 군생활을 하다가 별을 단 케이스들입니다. 전략, 전술, 교리, 보급, 무기체계, 훈련, 비상작계 이런 거 다 무시하고 일본군 방식으로 전쟁나면 목숨으로 사수한다. 한겨울에도 얼음물에 뛰어들어 정신력을 강화한다.. 군장싸고 모래주머니 달고 무조건 뛰어라 이런 똥군기만을 강조하던 장군들이 대세였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비판은 '어떤 사령관급 장군은 군전술과 지휘에 대한 철학부족으로 부하들 앞에서 전문성 있는 훈시를 단 1시간도 채우지 못할 정도다'라는 평가였습니다.. 그런데 군 내부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12.12 당시 갓 임관한 장군들이나 영관급 장교들은 정규 과정을 거치고 미군에 연수훈련까지 이수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정신력 강조하고 똥군기 세우는게 전투력 강화에 무슨 큰 도움이 되느냐는 회의론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1973년초 파리 협정에 의해 미군이 남베트남에서 완전 철수하고 약 2년이 지난 1975년 4월 30일에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무력으로 통일합니다. 이에 고무받은 공산권 세계와 북한은 서방세계와도 대결해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게 되고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대규모 전차와 전투기등을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정규 육사 출신들이 보았을 때 만약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과연 북한과 전쟁하면 저런 사람들이 지휘해서 북한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 잘못하면 X되겠다는 감이 듭니다... 결국 암묵적으로 현시점에서는 전두환 밖에 대안이 없다는 게 군 내부의 동의였고 미국의 판단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옛날에는 12.12를 민주화를 후퇴시킨 쿠데타로만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주변 정황을 살피게 되니 민주화를 후퇴시켰지만 대한민국을 지켜내기도 한 측면이 있다는 중립적인 평가를 내리게 되네요.
제임스본드 · 2023.12.10 09:29:43
그리고 전두환이 정승화를 조사하는 것도 나름의 명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시해현장에 박정희, 차지철, 김재규, 김계원(비서실장), 그리고 여자 2명이 있었습니다. 물론 정승화는 시해현장에는 없었지만 궁정동 안가에는 있었습니다. 정승화의 시점에서 보면, 갑자기 김재규가 달려와서 박정희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럼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군최고통수권자 입장에서는 김재규에서 사건 정황을 따져 묻고 직접 시해현장에 가서 상황을 파악하였으면 누가 범인인지 금방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시해 현장에 가보았으면 박정희, 차지철 죽어있었을테고, 목격자는 김재규, 김계원, 여자2명... 상식적으로 여자2명이 총을 숨겨와서 쏘지는 않았을테니, 김재규와 김계원 2명으로 범인이 좁혀지고 김계원은 비서실장이라 총기를 휴대할 일이 없습니다. 그럼 범인이 누구인지 금방 답 나오는 거죠. 근데 왜 김재규 말만 믿고 있다가 김계원이 범인이 말하기 전까지 사태 파악을 위한 행동을 하지 않은 걸까요? 이에 대한 조사는 분명히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정승화의 인간적인 면모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시해된 마당에 상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군최고통수권자가 과연 전쟁나면 그 역할을 잘 수행했을까.. 라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듭니다. 또 12.12때 노재현 국방장관이 대처는 커녕 곧바로 미8군 벙커로 도망갔죠? 딱 그 세대들 수준이 그랬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인성조 · 2023.12.10 09:43:16
위 군의 입장에서 보셨다고 하는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면 12.12는 하극상, 항명으로 이뤄진 쿠데타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여러가지 의견을 제시하셨으나 이는 군 내부의 시야가 아닌 구데타세력의 시야에서 본 변명밖에 되지 않다고 봅니다.
확장되는 공산화는 박정희 정권 초기부터 큰 문제였고 이로인한 미국의 원조시스템이 활성화 된 것이죠.
그리고 전두환은 당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총장 다음의 실질적인 2인자 노릇하면서 본인이 권력쟁취를 위해 정승화와 김재규 간의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럴싸한 구실도 구속시키고 사형시키려고까지 한게 팩트입니다.
만지지마힝 · 2023.12.10 09:51:28
아무리그래도... 전두환씨 죄없는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 12.12 5.18 그후로도 많이 죽였죠 무엇때문에 죽였습니까?
제임스본드 · 2023.12.10 09:53:28
전두환은 5.18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죄하고 발포 경위를 밝혔어야 마땅하죠. 그래서 후대에 영원히 좋은 평가는 결코 받지 못할 겁니다.
만지지마힝 · 2023.12.10 10:09:39
좋은평가를 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고 살인자입니다 12.12가 명백한 쿠테타인건 사람을 죽이면서 점령한것 5.18은 군인이... 그것도 육군 소장씩이나 한 사람이 같은 나라 죄없는 일반 민간인에게 발포명령...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피습 당할때 김재규가 정승화 불렀고 이때 김재규가 정승화랑 같이 육본으로 이동하여 사실은폐하고 계엄하자고 난리침...그때 간신히 살았던 김계원 비서실장에 의해 전부 탄로...계엄이 되고 전두환이 합수부장이 되고 군인사권으로 정총장과 부딪힘..대표적 수경사령관 노태우 안해줌..정총장이 결국 하나회 숙청으로 동해방어사령관으로 전두환 좌천시키려 하자....박정희 피습 당시 정승화도 같이 있으니 내란방조로 몰아서 체포하는 과정에서 12.12 일어남
전두환이 너무 나대니까 좌천시키려다 당한거죠...그리고 하나회가 나중에는 엘리트 급의 모임이 되지만 전두환 때는 성적도 안 좋은 찌질이 병신들 모임이었고 무시 당해서 쌓인게 많은 것들이었죠
간만에 보는 좋은 질문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지금 사람들의 관점에서 명분없는 쿠데타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느냐가 핵심입니다. 안타까운 건 지금까지 12.12에 대한 많은 시각들 중에서 당시 군부의 관점에서 본 시각은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점에 대해 말씀드려보면.... 전두환, 노태우 이후의 세대는 정규 육사 출신으로서 체계적인 군사교리와 훈련을 받은 세대입니다. 그런데 그 이전 세대들은 체계적인 장교 양성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아니라 해방과 6.25 전쟁통에 대충 훈련받고 장교로 임관하여 주먹구구식으로 군생활을 하다가 별을 단 케이스들입니다. 전략, 전술, 교리, 보급, 무기체계, 훈련, 비상작계 이런 거 다 무시하고 일본군 방식으로 전쟁나면 목숨으로 사수한다. 한겨울에도 얼음물에 뛰어들어 정신력을 강화한다.. 군장싸고 모래주머니 달고 무조건 뛰어라 이런 똥군기만을 강조하던 장군들이 대세였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비판은 '어떤 사령관급 장군은 군전술과 지휘에 대한 철학부족으로 부하들 앞에서 전문성 있는 훈시를 단 1시간도 채우지 못할 정도다'라는 평가였습니다.. 그런데 군 내부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12.12 당시 갓 임관한 장군들이나 영관급 장교들은 정규 과정을 거치고 미군에 연수훈련까지 이수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정신력 강조하고 똥군기 세우는게 전투력 강화에 무슨 큰 도움이 되느냐는 회의론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1973년초 파리 협정에 의해 미군이 남베트남에서 완전 철수하고 약 2년이 지난 1975년 4월 30일에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무력으로 통일합니다. 이에 고무받은 공산권 세계와 북한은 서방세계와도 대결해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게 되고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대규모 전차와 전투기등을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정규 육사 출신들이 보았을 때 만약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과연 북한과 전쟁하면 저런 사람들이 지휘해서 북한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 잘못하면 X되겠다는 감이 듭니다... 결국 암묵적으로 현시점에서는 전두환 밖에 대안이 없다는 게 군 내부의 동의였고 미국의 판단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옛날에는 12.12를 민주화를 후퇴시킨 쿠데타로만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주변 정황을 살피게 되니 민주화를 후퇴시켰지만 대한민국을 지켜내기도 한 측면이 있다는 중립적인 평가를 내리게 되네요.
그리고 전두환이 정승화를 조사하는 것도 나름의 명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시해현장에 박정희, 차지철, 김재규, 김계원(비서실장), 그리고 여자 2명이 있었습니다. 물론 정승화는 시해현장에는 없었지만 궁정동 안가에는 있었습니다. 정승화의 시점에서 보면, 갑자기 김재규가 달려와서 박정희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럼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군최고통수권자 입장에서는 김재규에서 사건 정황을 따져 묻고 직접 시해현장에 가서 상황을 파악하였으면 누가 범인인지 금방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시해 현장에 가보았으면 박정희, 차지철 죽어있었을테고, 목격자는 김재규, 김계원, 여자2명... 상식적으로 여자2명이 총을 숨겨와서 쏘지는 않았을테니, 김재규와 김계원 2명으로 범인이 좁혀지고 김계원은 비서실장이라 총기를 휴대할 일이 없습니다. 그럼 범인이 누구인지 금방 답 나오는 거죠. 근데 왜 김재규 말만 믿고 있다가 김계원이 범인이 말하기 전까지 사태 파악을 위한 행동을 하지 않은 걸까요? 이에 대한 조사는 분명히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정승화의 인간적인 면모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시해된 마당에 상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군최고통수권자가 과연 전쟁나면 그 역할을 잘 수행했을까.. 라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듭니다. 또 12.12때 노재현 국방장관이 대처는 커녕 곧바로 미8군 벙커로 도망갔죠? 딱 그 세대들 수준이 그랬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봅니다.
위 군의 입장에서 보셨다고 하는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면 12.12는 하극상, 항명으로 이뤄진 쿠데타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여러가지 의견을 제시하셨으나 이는 군 내부의 시야가 아닌 구데타세력의 시야에서 본 변명밖에 되지 않다고 봅니다.
확장되는 공산화는 박정희 정권 초기부터 큰 문제였고 이로인한 미국의 원조시스템이 활성화 된 것이죠.
그리고 전두환은 당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총장 다음의 실질적인 2인자 노릇하면서 본인이 권력쟁취를 위해 정승화와 김재규 간의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럴싸한 구실도 구속시키고 사형시키려고까지 한게 팩트입니다.
12.12 5.18 그후로도 많이 죽였죠
무엇때문에 죽였습니까?
전두환은 5.18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죄하고 발포 경위를 밝혔어야 마땅하죠. 그래서 후대에 영원히 좋은 평가는 결코 받지 못할 겁니다.
12.12가 명백한 쿠테타인건 사람을 죽이면서 점령한것
5.18은 군인이... 그것도 육군 소장씩이나 한 사람이 같은 나라 죄없는 일반 민간인에게 발포명령...
서울의 봄이 천만관객을 찍는다면
전두환은 21세기형 부관참시를 당하는겁니다
천만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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