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성웅 이순신 장군 탄신 478주년입니다.
자신의 공은 낮추고 철저히 부하들의 공을 추켜세우며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이를 객관적으로 기록하여 장계로 올림.
얼마나 충무공이 객관화의 화신이냐면
제일 가혹한 잣대로 기록한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임.
일기라면 무릇 어느정도 주관이 들어가 자기 중심주의적으로
적기 마련인데 스스로 행했던 과오나 실수들을 가감없이 기록하며
”오늘 이러이러한 부분은 분명 나의 과오에서 비롯된 것이니
앞으로 주의해야겠다“라고 본인을 끝없이 채찍질하심.
순신장군님은 승산 없는 게임은 참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위대하신 장군님이시죠. 영원히 잊을수 없는....
도로통제.등등 여행 오신분들도 많고
온통 시내가 난리 법석이네요.
근데 지들은 조선족을 종니 까.
이건 뭐랄까. ㅎㅎㅎ 생각만해도 웃긴다.
이 얌생이 조선족들.
무늬만 한국놈.
쪼다 선조가 존나 도망가 북쪽 국경 만주 근처까지
간 덕분에 일본이 완전 실망했죠
아이러니하게 선조 잡히거나 목이 날라갔음 진짜 일본 속국 됐겠죠
1차적인 침입 최전방 바다를 막은것은 부인할수 없는 팩트이기에 후세가 이충무공을 기억하는바가 아닌가 싶습니다
역사학자들마다 조금씩 의견은 갈릴지 모르나
제 생각엔 만약에
선조가 성군이였으면 이충무공께서 적어도 전쟁중에 전사할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네요
이순신 장군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한계가 많았어요.
전국토와 전백성이 초토화되고 고통을 받았죠.
사람 고기를 먹었을 정도로.. 우리는 부인하는데
명나라 진린 지원군과 선조의 도망이 일본이
조선을 완전 장악하는데 실패하게 했죠.
유성룡의 징비록에도 기록되어있죠.
일본군사전략도서에서도 조선원정 실패사유의 하나로 분석되었죠.
허한 웃음만 나오게하는..
그러나 일차적으로 육지에서는 의병의 활약, 해상에서의
이순신 장군의 왜군 지원 보급로 차단 등의 혁혁한 공이
역할을 한것은 동감해요.
사학자들의 심포지움에서는 이장군은 자살한거나 마찬가지라
말하고 있습니다. 대장군 즉 총사령관이 마지막 전투에서
보란듯이 북을 치고 전면에서 진두지휘하며 명령하는 것을
왜군 저격병이 놓칠리가 없죠. 함선 위치와 갑옷을 보면
고위장군이라는 것을 다알텐데.. 전쟁 끝나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전사하는게 낫다고 생각한거죠.
그리고 실제 그전 전투중 날라온 화살로 인한 부상으로
계속 고름이 흐르고 아퍼 생활하는게 고통스러웠어요.
게다가 어머니의 죽음 둘째 아들의 왜군으로 부터 난자
당한 개죽음 등으로 정신적으로 황폐해졌답니다.
이면에게 죽기전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라는 유언은
이미 죽음을 예상했거나 빨리 죽고 싶단 반증 아니냐 라는
추론입니다.
그쵸 전쟁이 끝난후에 다시 조정에 돌아가봤자 나라를 지켰다는 공은 커녕
토사구팽 당할걸 알기에
마지막이라 생각한 전투에서 죽음을 선택했다 저도 생각되어집니다.
정부 장차관들 1년에한두번 이순신장군 등등 교육이될만한
업적을남긴분들 교육을시켜야한다고봄
도무지 너나나나깜도못되는사람들이 자리를차지하고 국민돈을월급으로나가니
한심하구요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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