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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 1차 봉기 당시 경군의 전주성 탈환과 성급한 청군 파병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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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기록

     

    3일 미시(未時)쯤 적이 전라 감영(全羅監營)의 서문(西門)과 북문(北門)을 활짝 열어 놓고 누런 빛깔의 큰 깃발을 세운 다음에

     

    5, 6천 명의 군사가 관군과 싸웠는데 적이 크게 패하여 목을 베거나 사로잡은 숫자가 1,000여 명이었다. 적의 괴수

     

    김순명(金順明), 어린 장사 이복용(李福用), 참모(參謀) 선판길(宣判吉), 이른바 곽(郭) 장군, 박장사, 정(鄭) 장군이라는 자들은

     

    모두 죽고 장사(壯士) 전녹두(全祿斗)는 머리뼈가 부서지고 다리를 상하였다.

     

    적은 여전히 성(城) 안에 웅거하여 줄곧 굳게 지켰는데 관군은 더욱 사기를 높여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때에 김순명의 머리를 적의 깃발 대에 달아매어 효수하니 남은 적이 크게 놀라서 적들은 패하여 돌아갔다. 

     

    8일 진시(辰時)쯤 초토사(招討使)가 군사를 정돈하고 성에 들어가니 성 안의 백성으로서 종전대로 살고 있는

     

    남녀노소가 수만여 명이었다. 노획한 무기는 창과 총이 1,000여 자루, 불랑기(佛狼機) 대포 24문〔坐〕,

     

    납탄 5만 8,000여 개, 화약 1,000여 근(斤)이고 그 밖에 활과 화살, 갑옷과 투구, 칼과 도끼 등속이었다.

     

    모두 다 회수하여 대장에 올리고 방을 붙여서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1894년 4월 27일 동학군이 전주성을 함락한 직후 도착한 홍계훈

     

    휘하의 경군이 전주성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를 잡고 여러 차례

     

    동학군과 충돌하였는데 근대 화기로 무장한 경군의 거센 공세로

     

    전주성의 동학군 주력이 참패를 거듭하고 1000여 명의 손실을 입었으며

     

    전봉준을 포함한 동학군 지휘관들이 대다수 죽거나 부상을 입는 등의

     

    큰 피해를 입은 뒤에 도주하여 5월 8일에 경군이 전주성을 탈환하였다.

     

     

    [사견]

     

    이렇게 자국의 병력만으로 충분히 진압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4월 27일 전주성이 함락된지 이틀 만에 고종과 민영준은 여러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군 파병 요청을 예고하고 바로 정식으로 요청하면서 결국 끝나고만

     

    안타까운 역사의 한 획이지 않을까 생각 되어집니다.

     

    동학 아쉬운 혁명임에는 틀림이 없는 개인적인 생각 입니다.

     

     

    댓글9

    dnsnsnsnncnjs
    dnsnsnsnncnjs · 22-10-12
    조선말기는 진짜 좆같은나라였죠 어렸을땐 몰랐는데 나이점점먹으면서 느끼는건데 나라팔어먹은 이완용고종민비같은애들말고 소시민이 먹고살라고 친일부역한건 욕못하겠음
    캐논포
    캐논포 · 22-10-12
    글자를 모르는 이들이 이장이 와서는 자식새끼들 이름 이렇게 4자로 호적에 올리면 쌀 한대빡 준대서 이장이 써준대로 한게 창시개명 ㅋ 지금 40년대초에 태어난 노인분들 중에 일본식 이름 쓰는 분들이 대부분 이런 분들입니다 해방후 다시 고치면 됐을텐데 글자를 모르고 행정에 어두운 부모들이 그게 뭔 대수냐고 신경도 안썼겠죠
    오늘형
    오늘형 · 22-10-12

    노상공비가 하면 운동, 일본사람이 하면 ㄱㅅㄲ. 중국사람이 하면 굽신 굽신 

     

     

    캐논포
    캐논포 · 22-10-12
    어허 대한제국은 근대화된 정예병 3만명을 거느린 강국이었다구욧~!ㅋㅋㅋ
    오늘형
    오늘형 · 22-10-12

    3만이여? 근거는여

    캐논포
    캐논포 · 22-10-12
    조롱하는거에여 진짜로 받아들이시네
    덴마형
    덴마형 · 22-10-12
    동학농민운동을 성공만 했으면 기대해볼만한 아쉬운 역사의 한장면인양 포장 ㅋㅋ 민권의식도 법리도 지식도 과학도 군사교리도 없는 발버둥이었을 뿐 혁명은 커녕 성 몇개 빼앗은 수준의 지역 농민 봉기임.
    캐논포
    캐논포 · 22-10-12
    갑신정변의 주역인 박영효는 동시에 친일 매국노 입니다 조선에 대한 기대감이 산산조각난 후에 바로 친일로 돌아서죠 반면 서재필은 고종에게 집안이 학살 당했음에도 독립운동에 헌신합니다
    오늘형
    오늘형 · 22-10-13

    글도 모르는 ㅄ들이 뭘하겠어여 그냥 멍때리다가 청나라나 일본군이 들어오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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