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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흥을 접어볼까 생각하니 Part.1 (부제: 추억이 방울방울)

     

    쓸데없이 글이 깁니다

    괜하게 읽지마시고 심심하실때 읽으세요

     

     

    결혼과 동시에 끊은 유흥을 다시 하게 만든 나쁜 뇨온~

    DSCN3654.jpg

    매번 글을 올릴때 마다 한장씩 소심한 복수차원으로 올려봅니다.

     

     

     

    제 나이 어언 50대중반 내일모래면 주민번호 앞대가리와 같은 별을 달게 됩니다.

    살아왔던 지난 일들을 생각하자면 그 소회는 영겁과 막 먹을 기셉니다.

    초등학교 때 초딩 여 동창 잘못만나서 초6때 연초를 달고 살았고

    중 1때 동내 누나 잘못 만나서 낮술과 향연과 함께

    14년 고이 간직했던 내 아다증명서를 강제 반납 당했습니다.

    그에 대한 반항심으로 복수 전쟁을 다짐하며 여러 부류의 Y들과

    염색체 나누기 재능기부에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일일이 수첩에 꼼꼼히 기재하지는 않았지만 얼핏 대략 고 3때 무렵

    얼핏 업소녀 포함 백 명을 간단히 돌파 했을 겁니다.

    중딩부터 나이트로 다져진 안면마비 증세로 고 2시절부터는

    맥양집을 주 무대로 유흥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당시 맥양집 언니들은 미성년자 고용업소가 많았습니다.

    대구에 가면 유신학원반월당 일대에 자주 가는 단골집이 있었는데

    영업용 맥주 큰 것 세병 그리고 마른안주 과일안주해서 14000원 하던 시절이었죠.

    참 찰 지게 놀았습니다.

    가끔은 동대구역 여관바리로 찾아가면 20대 연상 누나들에게 귀여움 받으며

    야간 전투력 측정을 받고는 했습니다.

     

     

    그리고는 입시를 위해서 잠시 상경을 했습니다.

    전공이 미술이라 입시를 위해 학원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유학을 왔더랬죠.

    집 형편은 갑부는 아니었지만 부유한 형편이라

    상경과 즉시 꿈의 무대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서울 마포 환일고를 다니던 꼴똥(수꼴 아님) 친구 덕택에

    청량리 588도 가보고 영등포도 가보고 아현동 굴다리 밑 맥양집도 전전하며

    유흥의 진도를 다 잡아갔더니 제엔장 역시 1차 낙방으로 하행선을 타고

    2차 시험 합격으로 고향집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남들은 유흥의 시작이라는

    대학시절부터는 그냥 무난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고 안한 건 아닙니다만 자급자족으로 연명하며 살았습니다.

    이맘때 항상 고맙게 생각하던 곳이 대구 반월당 덕산나이트 항상 고맙습니다.

    여윽시 스카이보다는 덕산이 그나마 수질이 일급수에 가까웠기에

    나이트가 지겨워질 무렵

    군대로 돌진 군인의 절대 의무인 위수지역 강원도 화천 다방을 사수하였고

    휴가 시에는 묘기대행진을 관람하러 미아리 텍사스로 급파되기도 했으며

    고향집에서는 그동안 갈고닦은 포복 실력을 과시하려 자갈마당으로 돌격했습니다.

     

     

    이윽고 제대와 함께 곧 이은 졸업

    그리고 아버님 잔소리를 피하려 상경하였습니다.

    친구들이 다들 강남과 방이동 자양동 화양리에 거주했는데

    입사하기 전 반년 간을 나이트클럽 즉돌이로 생활했습니다.

    또한 집창촌을 집대성하려고 태어난 야타족 1기생 친구 덕택에

    그놈 집 가까운 천호동 심지어 평택물이 대세라고 자다가 끌려서

    평택까지 왕복하던 생활

    전 그당시 미성년이 많았던 천호동이 차라리 좋았건만

     

        

    우리 세대들 특히 제 친구들을 소히 오렌지족이라 칭하던 시기였는데

    그 당시 벤처기업 주식 버블로 강남의 돈이 쓰레기처럼 넘쳐났던

    대한민국 유흥의 최호황기이자 절정기였죠.

    주 무대는 노보텔엠베서더 코마가 서식지였는데 (그 반대편 치치도 가끔)

    담당 웨이터 신성일 형님이 끝 발이 있던 시기라

    줄 한번 안서고 바로 입장하는 프리패스를 시전 하던 시기였었죠.

    줄 서던 애들 얼마나 얄미워하면서도 개 부러워하던지 ㅋㅋ~

     

     

    하여간 그 당시도 별의 별년들 많이 만났습니다.

    룸빵 다나는 년이 자기야 자기가 운전해 하면서 외제차 키를 던지던 년

    자기집 비었다고 친구들 다 끌고 새벽4시 넘어 서초동 빌라로 갔더니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심지어 가정부까지 만나게 해주시던 돌아이 이쁜이

    신성일이 형님이 영동 줄리아나 서울로 옮긴 이후 놀러 다녔더니

    부킹한년이 부킹하자마자 날 밖으로 끌고 나가서 가슴에 손을 쓰윽 넣더니

    오빠 우리 결혼하자 ~

    제 인생 역사상 가장 단시간에 청혼을 당한 비극적인 날

    근데 너무 이뻐서 반년을 사겼는데 결국은 택시비 때문에 헤어지겐 된

    그 당시 제가 일산에 집을 사놨고 그년은 집이 분당 시범단지라

    강남역 포차에서 술을 마셔도 2~3만원이면 떡을쳤는데

    총알 택시비가 감당이 안되서리 결국은 포기했던

    써글 모텔비가 훨씬 경제적이라는....

     

     

    그 당시에도 3S 스왑 해 볼 건 다해봤는데 영 재미가 없어서

    두 번 다시는 안하는걸로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의 성화로 결혼에 입문하는 비극이 시작되었죠.

    공무원이셨던 아버님 정년퇴직전에 결혼 하라고 부탁하시어서

    2대 독자라 명을 거역하기에는 뭔가 미안함이 들어서 선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지만 결혼은 1도 생각지 않았던 저였기에

    무애인 상팔자를 시전 중이었던지라 하여간 결혼에 입문합니다.

     

     

    전 결혼 생활과 동시에 모든 것을 지웠습니다.

    아내가 너무 착하기도 했었고 순결한 여자였던 것도 있지만

    막상 결혼을 하게 되니 인간 특히 남성 근본의 의무감에 타 올라

    아이 둘 낳을때까지 20대 초빵빵이가 팬티를 보일락 말락해도

    곁눈질 한번을 아니지 거짓말은 나쁜거니까 두 번 이상은 쳐다보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유흥 생활은 없다라고 생각하고 살던 내게 악녀가 등장합니다.

    제 비극과 유흥의 재 시작을 알리는 여인의 등장

    그 악녀 덕에 아직까지 지겨운 유흥 생활을 이어왔네요.

     

    글이 길어서 다음에 이어서 적겠습니다.

    보실분들만 보시고 특히 저랑 같은 연배분들 환영합니다.

    다른 사진 이어지는 글로 다시 돌아옵니다.

     

     

    댓글50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6

    원래 이글을 쓰려고 한건 아닌데 진짜 쓰고 싶은 이야긴 마지막에 나오겠네요

    그저 에피타이져라고 생각하세요 ~

    프롤로그라고 보셔도 되고요

    한 게시물 10개 정도 올리다보면 진짜 쓰고 싶은말 나오겠네요

    굿밤들 되세요~

     

    한빠께쓰
    한빠께쓰 · 22-08-27

    제가 비슷한 연배네요. 그래서 다음 이야기 더더욱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60년대 후반 태생입니다. 국민학교를 다니고 고교때 두발자유화 되구

    교복자율화를 맞본 세대입지요

    중3때 마이클잭슨이 빌리진을 들고 세상에 나온 시대

    정말 그때가 그립습니다만...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수가 없는거니까...

    아쉬움은 항상 남습니다.

    새로시작
    새로시작 · 22-08-26
    이등병님의 글빨이 ㄷㄷㄷ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6

    이등병이긴 하지만 유흥접으려고 하는터라 계급은 자진강등을 했다고 보시는게 ~

    소라 아오이넷(금지어군요)부터 쭈우욱 이어온 짬밥이 있답니다.

    그리고 팝폴더가 아이팝이 되던 시절

    상위권 클럽의 시삽이기도 했는데 그 클럽도 저 망할년 때문에 스스로 포기했었다는...

     

    담에 또 뵈요~

    김세정
    김세정 · 22-08-27

    여탑 계급만큼 쓰레기같은 잣대도 없습미닫ㅋ

     

    빨다만 걸레님 내공이 느껴지시는군요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자려다가 닉네임보고 댓글 답니다

    세정이 느므느므 귀엽지요 ~ 덕분에 안보던 드라마를

    정주행 했었답니다 사내맞선 재밌게 봤었는데

     

    제 인생에서 또 언제 그런 풋풋함을 맞볼수 있을까요

    진짜 인생은 일장춘몽인지라 

    나쁜짓만 안한다면 즐길수 있을때 즐기는게 정답같아요

     

    굿밤 되시어요

    찹쌀떡
    찹쌀떡 · 22-08-27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는데, 걸레님은 할 짓 다하고 시대를 풍미하셨네요.      난 뭐하고 허송세월 했나 모르겠네요.     아무튼 좋은 글로 대리만족이라도 하게 해주세요.  ㅎㅎ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일장춘몽이라고 자다가 깨어보니 머리는 백발까진 아니어도 어느새 새치가 무성합니다.

    인생무상을 느끼며 살아가는 요즈음 입니다.

    뭐 나름 해볼건 다 겪어보고 살았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더 추억이 있는글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휴지사랑
    휴지사랑 · 22-08-27

    한마디로 필력이 오지게 맛나십니다!! 짱짱~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니 

    저두 한마리 고래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거마스터
    에거마스터 · 22-08-27

    복귀 환영합니다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이등병이라 자유로이 댓글 달수있는 한달을 기다렸네요~

    복귀하면 안되는데 은퇴하게 해주세요 제발 

    ㅎㅎ 좋은글로 자주 뵙지요

    활대링크
    활대링크 · 22-08-27

    뭔가 공감이 많이 되는 글 이네요

    잘 봤습니다 ^^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첫글이라 그냥 프롤로그처럼 훓고 지나간 기분이지만

    차차 세세한 이야기로 찾아뵙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프랑코
    프랑코 · 22-08-27
    재밌게 잘봤어요 저도 옛날생각 나네요
    자갈에 태양이...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제 고향이지만 사실 자갈마당은 많이는 못댕겼습니다.

    지금까지 가끔 댕기는 여관바리 위주로 다녔지요

    자갈마당은 군바리시절 가끔은 다녔는데

    조개가 참하게 맛있는 누님들이 꽤 있었더랬죠

     

    걔중에 일부 이쁜이 수술을해서 너무 빡세게해야

    겨우 집어 넣을수 있었던 누님들도 있었더랬는데

    아다보다 더 넣기 힘들었던 누님도 있었는데 

    이거 의료사고 아닐까 했습니다.

    제이윤
    제이윤 · 22-08-27
    좋네요..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차차 기억이 더 또렸할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은 구냥 맛보기라...^^

    운우락
    운우락 · 22-08-27
    기억 저 깊은곳에 있는 이야기 보따리가 풀리는가요?
    일본AV로 진출했으면 한시대를 풍미했을건데...
    지금이라도 나가보심이....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제 유흥인생의 70프로는 꿰뚫고 계시는 형님께서 댓글을..

    차암 세월 빠릅니다.벌써 형님따라 인천온지 3년이 다되가네요

    제가 실명으로 후기 적었으면 난리가 났을텐데,,,

    웬만한 소설책은 저리가라 잖아요..

    이걸 밝힐수도 없고 형님덕분에 대나무숲 갈일은 없었습니다.

    ㅋㅋ~

    하루종일
    하루종일 · 22-08-27
    말씀하신 곳이 다 기억납니다. 참 그때가 좋았죠.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아무래도 젊은시절의 향수는 그 가치가 다르더군요

    지금도 아가씨들에게 부러울 것 없는 인기도 있는편이지만

    뭔가 허전한 사상누각이란게 느껴지더군요

     

    키스도 젊은 남녀가 나누는게 그림이 아름다운것처럼...

    GST_King
    GST_King · 22-08-27
    선배님의 역사가 부럽네요...ㅠㅠ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언젠가 후배님도 과거를 회상하는 시절이 오겠지요

    우리 젊은땐 결혼도 직장도 집도 구하기는 쉬웠는데

    지금은 많은게 힘든 시절이니 유흥을 빼놓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기가 드세서..

    아우님들 힘내십시오...

    필살기™
    필살기™ · 22-08-27
    옛날 생각 많이 나네요.
    저도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거 같습니다.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저도 앞만보고 사는 스타일이었는데

    50대 중반을 넘어서니 뒤를 가끔 돌아보게 되더군요

    참 아픈 기억도 많았지만 되새겨보면 미소가 지어지는 추억도

    너무나 많았더군요 

    인생이 그런거 아니겠어요 남은기간 힘내서 살자구요~

    Xxxvgd
    Xxxvgd · 22-08-27
    으르신 필력이 최고네요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칭찬 감사드립니다. 급하게 쓴글이라 두서는 없는편인데

    좀더 다듬어 다음글로 찾아뵙지요...

    에헤라데이야
    에헤라데이야 · 22-08-27
    저도 대구1년간 출장시 자당에서 이모가 차려주는
    아침밥먹고 나이트,빠언니들 섭렵하고 다닌 기억이
    나내요 ㅎㅎ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타지에와서 현지에서 노는게 오히려 현지인들보다

    더 잘놀다는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자갈마당 참 추억의 장소로 맘속에 남겨야 되는~

    나토루
    나토루 · 22-08-27
    존나 재미나네요 2탄은 결재를 해야 하나요 ? ㅎㅎ 약간 영화 타짜시나리오 보는 느낌 ㅎㅎㅎ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이제 2부를 쓰려하는데 은근히 부담이 됩니다. ^^~

    3부가 기다려지도록 최선을 다해보렵니다.

    결제는 절대 안하셔도 됩니다... 여탑인을 위하여 무료로 모십니다.

    츄츄트
    츄츄트 · 22-08-27
    너무 재밌습니다 ㅋㅋ 필력 대단하시네요 글이 술술 읽힙니더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재미잇게 읽으셨다니 천만다행으로 알겠습니다.

    곧 2부 올려보겟습니다.

    드라마처럼 일주일에 두개의 게시물을 올려야 겠어요...

    계속쓰기엔 사는게 바빠서..

    다릿닷
    다릿닷 · 22-08-27

    오렌지족은  밴처기업 붐으로 돈많이 벌어서

    쓰고다니는 애들보다  특히 강남에 돈많은 자식들이

    만들어낸 문화져  싸이가 대표적 오렌지족이져 

    싸이데뷔곡  "새 "거기에  그당시 문화가 반영된 노래져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아 물론입니다 오렌지족들은 대부분 부동산 졸부 아들들입니다.

    다만 그 시대 룸빵같은곳의 돈줄은 주식의 영향도 컸다는겁니다.

    그 당시에도 하룻밤 400짜리 윤진이 같은애도 있었으니

    아마 미스 경기 선이었나 그랬던걸로 기억

    뒨맨
    뒨맨 · 22-08-27

    은하철도 999,,,그 당시 그 주제가가 참 쎄하게 느껴졌었는데 그 만화가 1981년 종영이었다네요, 벌써 40년이 덧없이 흘렀네요.

    우리건물 80대 중반의 어르신을 보면 참 답이 없네요.

    세상이란게 참 일장춘몽, 남가일봉, 인생 뭐 있을까요,

    남은 인생중 오늘이 제일 건강한날, 유흥도 몸만 받쳐 준다면 재미지게 살아야죠.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메텔보면서 느꼈던게 어젯밤의 일같습니다.

    세월 참 빠른데 이게 다 써가는 스킨처럼 점점 더 밑바닥이 빨리

    비워지는 느낌 이랄까..

    인생무상

    강남싸이
    강남싸이 · 22-08-27

    몇살 형님이신데 미대나오셨으면 지금은 무슨일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전 회화가 아니라 응용미술이라..

    국민대 시디과 물먹고 고향으로 내려왔었죠..

    군 제대후 상경해서 맥캔토시 배우면서 나이트 죽돌이 생활을 했었네요

    광고회사 다니다가 때려치고 주로 장사만 하고 살았습니다.

    멍구야
    멍구야 · 22-08-27
    와 여기서 치치 코마 얘기가 나올줄이야 ㅋㅋㅋ
    아이고야 반갑습니다 전 개인직으로 코마보단 치치가 물이 좋더군요 영업사장 형들이랑 친해서 그런가 ㅋㅋ 알마니가 그당시 유니폼이던 시절 ㅋ.
    경원 오피스텔 옆 그 작은 호텔 지하 치치 물 좋았죠 부킹해서 신사동 가라오케 참 자주 다녔는데
    추억돋네요
    빨다만걸래
    빨다만걸래 · 22-08-27

    치치가 그 모텔급호텔 다이너스티 지하

    가끔 코마에서 부킹했던 애들이 오빠 우리 치치에 있어하면

    치치에서 놀다가 새벽에 다시 코마로 넘어올때도 있고

    바로 신사동 가라오케로 직행해서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그당시가 코마가 국산양주 작은거 기본이 17~18만

    썸씽 큰게 기본세팅 23만있었던 시절이었는데

    가라오케는 나이트 보다 1.5 비쌌습니다.

    하긴 불법으로 철문안에서 영업햇었으니..이해는갑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코마 치치 우리 아마 예전에 스쳤을수도 있겠네요..

    가드방지
    가드방지 · 22-08-27
    대단하세요 ~필력에 꾸벅
    남자이당
    남자이당 · 22-08-27

    여자 그곳 씨껌해요 심심해 자세히 봤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눈환장 

    웨폰
    웨폰 · 22-08-27
    기대되는 2탄입니다
    부가세별도
    부가세별도 · 22-08-28

    90년대 초반  로터스,힐탑,줄리아나가 아닌 알짜들은 논현동 치치를 다녔죠 ㅋ 추억 돋네요

    씨없는수박
    씨없는수박 · 22-08-28
    이야.. 형님 미술전공이시라 그런지 글 쓰시는 것도 예술인 티가 나십니다..
    조루대왕
    조루대왕 · 22-08-28

    저랑 비슷한 연배신데 저보다는 살짝 형님이신거 같네요....

    저도 두루 유흥을 접했다 생각했는데 기력이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다만, 저는 돈이 없다보니 자급자족으로....한때 유행했던 세이클럽 같은 채팅으로 만남을 했었습니다ㅋ

    안티푸라민
    안티푸라민 · 22-08-28

    저랑 갑장이신듯

    어디에선가 스쳤을듯 ㅎ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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