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발달했던 유교사상 때문인지
우리는 흔히 과거의 사회 풍속은 매우 보수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조선시대는 보수적인 사상이 짙었지만 그보다 전인
고려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고려시대의 성문화에 대해 듣다 보면
오히려 지금이 더 보수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당신이 깜짝 놀랄 수도 있는
고려시대 성에 관한 이야기 7가지를 소개한다.
1. 자식끼리 혼인시킨 왕건
왕건의 넷째 아들 왕소와
셋째 딸 황보씨는 이복남매이자 부부이다.
뿐만 아니라 왕소의 두 번째 부인은 이복형의 딸이자 자신의 조카였던 경화궁부인 임씨였다.
이는 왕족의 순혈주의와 외척세력을 견제하려는 방편이었으나 엄연한 근친이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2. 동성애를 행했던 공민왕
고려 시대의 공민왕은 자제위라는 기구를 만들어 미소년을 궁에 출입하게 했다.
공민왕은 궁으로 끌어들인 미소년들과 동성애를 즐겼으며, 임금의 침실에서 집단 간음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3. 자연스레 이뤄졌던 남녀혼탕
요즘에는 목욕은 남녀가 따로 하지만, 고려 시대에는 혼탕이 대중적이었다.
또한 여름철 시냇물에 모여 물놀이를 할 때 속옷을 드러내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4. 남녀 간의 잦은 이별과 만남
과거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에 와서 보고 들은 것들을 적어놓은
고려도경에 따르면, 고려 사람들은 남녀가 가볍게 연애하고 헤어진다고 기록돼 있다.
일반 민중에서뿐 아니라 왕실에서도 왕과 왕비가 재혼이었던 경우가 흔했다.
5. 전국팔도 미녀들을 불러모은 충렬왕
충렬왕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전국에서 가장 어여쁜 여성들을 선발해 노래와 춤을 가르쳐 여자배우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을 기생으로 삼고 임금 전용 극장에서 밤낮없이 놀았다.
6. 자유분방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고려의 가요 쌍화점
쌍화점은 한 여성이 서역인, 승려, 용, 술집아비 등을 찾아가 잠자리를 했다는 내용의 가요다.
노래에는 시대상이 반영되는 만큼 이를 통해 고려의 여성과 남성들이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겼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7. 남녀 간의 사랑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만전춘
"얼음 위에 대나무 잎으로 자리를 만들어서 사랑하는 임과 내가 얼어 죽을망정 오늘 밤이 더디 지나갔으면 좋겠다"
만전춘에는 솔직하고 과감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당시의 풍속이 담겨있다.
이때 남녀가 얼다는 남녀가 사랑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저 시대에 태어났어도 나는 안 됐겠지 ㅠㅠ
와우 성진국이네
저랬던 한국이 어쩌다 이 모양이 된거지? 여자 사귀기도 힘든 환경과 문화에 옷깃 스쳤다고 성추행 했다고 고소에, 여가부라는 이상한 부서까지
생겨나서 지들이 일방적으로 피해자라고 부르짖고 있지 않나, 시대가 참 안좋네요.
신라,고려의 성문화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웠다는게 정설이죠
원래 불교국가들이 성문화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이랍니다. 태국이나 베트남 같은데만 봐도 알수 있죠
학부때 들은 강의에서도 교수님이 순화시켜서 말해주는데도 상당히 수위가 센 기억이..
이성계가 이런 개방풍조를 아주아주 싫어하고 더군다나 그 시기쯤 전파되서 널리 퍼진
성리학의 이념으로 조선을 아주 강력한 유교국가로 만들었다고 하더라구요,
남녀평등 국가입니다!! 고려말 탐욕의 귀족과 타락한 왕들이 가렴주구하니 민초들이
신진사대부 개혁파 정도전 계민수전에 뒤집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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