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여탑주소는 yeotop7.org이며, 이후 예정 주소는 yeotop8.org 입니다.

    v2 사이드 1 · 340×122
    v2 사이드 2 · 340×122

    조선시대 여자가 재산 공동명의 요구하면 당하는 일ㅋ

    Screenshot_20220531-143040.jpg

     

     

    그것은

     

    처갓집 학살 

     

    그래도 장인장모 살려준 걸로 봐선 성리학 군주 맞음 

    댓글6

    미란다섹N
    미란다섹N · 22-05-31

    유명한 힐러리여사의 일화가 생각나는군요...

     

     

    미친빨갱이
    미친빨갱이 · 22-05-31

    처가만 학살한게 아니죠. 세종의 처가.. 자기 사돈집안도 박살냄.

     

    세종에게 왕위를 넘기면서도 국방=병권은 넘기지 않고 세종의 장인은 사약으로 죽이고, 장모는 관청 노비로 만들죠.

     

    이런 태종과 복사한 듯 똑같은 권력에 탐욕고 살육을 저지르는 인물이 태종의 손자인 세조.

     

    동복 형제, 이복형제, 조카, 서모(세종의 후궁), 사돈 까지......

    제로베르
    제로베르 · 22-05-31

    태종이 대중매체에서 킬방원이니 학살자니 이런면모만 너무 부각해서 냉혈군주로만 편향되게 볼수도 있으나 실제로 불경죄를 비롯 고려충성파 일원들 중 많은 인재들을 선처해준 나름 합리적인 군주이기도 합니다 이성계 아들중 천재적인재능으로 문과급제도 했고 지식도 있는 엘리트기에 이성계같은 무장보단 문관 느낌이 강하죠 민씨일가 같은 경우 민무휼 민무구에게 재차 경고를 했음에도 자기누이믿고 설친 최강의 미친짓을 보였는데 그게바로 태종앞에서 왕위계승선례 들먹이며 양녕 세자로 앉히고 효령 충령 죽이다는 불경스런망언을 하여 1스텍 사병몰수 불응에 2스텍 쌓여서 본보기로 잡되 그들의 씨늘 장인장모비롯 일부자식들의 씨를 말리지는않았습니다.
    이방간같은경우도 유배후 고독사 시키긴 했지만 조카를 챙기는등 무조건 칼만찬거는 아니지요

    궁궐내부 잘못들어 왕의 침실까지 들어온 신참 내기 관료를 용서한일도 있고 상당히 전략적인 숙청을한거죠
    막말로 내가 왕위를 힘들게받았는데 그앞에서 자기누나앞세워 양녕밀고 나머지후환없애자하고 대놓고 실세잡으려함 괘씸하죠ㅋㅋ어떻게 된왕인데말입니다

    윗분말씀대로 세조와 태종을 비교하는건 태종에게 실례입니다

    태종은  죽이더라도 최대한 살생유택했죠 애초에 능력의 그릇도 다르구요. 세조는 형인 문종만큼의 지식 인품이 안됐었기에 장자상속이 이뤄진거라 형들보다 뛰어난 자기할배 태종 세종보다는 좀 하위호환격인물이죠

    흔한뽀로로79
    흔한뽀로로79 · 22-06-01
    세종을 태종이 만든걸 수도...
    toomuch
    toomuch · 22-06-01

    태종이 그냥 기분에 따라 외척들 사돈들 제거하는 극악무도한 사람으로 비춰지지만 .......

    사실 나름 그 외척들을 제거한건 어느정도 이유가 있었고, 그 처리 전에도 합리적이게 경고를 계속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자신이 결정한 일에 사사건건 원경왕후와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에게가서

    분탕질 하는 모습을 좋게 보지 않고 계속 주의(민무질 한직)를 주었음에도

    민무질 형제는 전혀 개전의 여지가 없었고 , 이미 그 분위기를 눈치 챈 민제(원경왕후, 민무질 형제 아버지) 대감이

    아들들에게 자중 하고 조용히 지내거나 낙향하라고 권유하였어도 

    분위기 파악 못하고 계속 분탕질 쳤다는 거......

    태종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후대 대권을 이어 받을 세력이 이 외척들이 건재하게 존재한다면......왕권이 흔들릴 수 있기에 

    그러한 선택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저였어도 그랬을듯).......또한 역사학자들  역시도 당시의 정안대군(태종)의 그러한 일련의 일은

    이미 2차왕자의 난 당시  개국 공신 박포의 처리 문제에서도 두드러지게 나왔다는것에  그 맥(처리를 그렇게 할수 밖에 없음)을 같이 하고 있고

    자신의 형인 이방간의 아들에 대한 처벌과 그리고 처우도 절대로 박하지 않았다는 것에 비출 때.... 진정 그가 과격하기만 했던 군주인지?

    생각을 여러번 다시 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미 자신의 처남도 그렇게 후대를 위해서 처리하는 판인데 

    이후 세종의 장인인 심온은  분위기를 파악했어야 함에도 

    어떻게 보면 태종이 떠보는듯 하게 자리를 주었던 명나라 사은사 행렬을 너무나도 과하게

    마치 차기의 대권의 핵심인물인 마냥~ 성대하게 하고 떠났고.....

    이를 본 태종은 역시나 그 인물 마져도 제거해야~ 세종의 친정(親政)에 해(害)가 없을것이라는 걸 ......

    (물론 그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심온의 대한 숙청은 모든 역사가들이 인정하는 과한 처벌이었기는 함...)

     

    하다못해 자신이 키우다 시피한 동지인 이숙번도 세종에게 쳐낼 명분과 방법 까지

    알려줬다고 하니.....

    태종은 단순히 자신의 기분에 따라 숙청을 한 것은 아니고 철저한 이유가 있었고 그들이 살수 있었던 분명한 기회가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회원 한분이 태종과 세조를 비교하시면서 비슷하다고 하시는데~ 제가 볼때는 완전히 다른것이......

    세조는 자신이 왕권을 잡기 위해 '계유정난'을 일으킨 이유가

    권신(김종서, 황보인)들의 황표정사로 좌자우지 하는 신권정치를 비난하며 정변을 일으켰지만.......

    계유정난 후 실상 세조의 왕권이 강해지기 보다는

    김종서 황보인의 권신의 자리를 한명회 신숙주가 갈아 탄 것일뿐

    그 이후로도 황표정사보다 더더욱 강력한 신권정치의 핵심인 분경이 이루어진걸로 보아

     

    태종의 외척 숙청과 세조의 정변은 동일 선상에서 놓고 볼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탑탑차장
    탑탑차장 · 22-06-03
    괜히 죽였겠음?

    댓글 작성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