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입니다.

중학교 다닐 때 7-8명 되는 같은 학년 아이들한테 집단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그 중 주동자 한 아이는 여러 명의 측근들 앞에서 나의 얼굴을 때렸다.
주먹질이 아팠다.
더 아픈 것은 친했다는 친구가 나에게 직접 말을 하지 않고 뭔가 있는 불만을 이런 식으로 여러 명을 동원해서 폭력을 가했다는 것이 아팠다.
거의 45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아픈 기억이 또렷하다.
“너희들 오늘은 여러 명 왔으니 내가 이번에는 그냥 넘어 간다. 그러나 너희들 단독으로 나와 마주치면 무조건 도망가라. 왜냐하면 그날은 너희들 초상 날이다.”
그리고 몇 달을 걸쳐서 학교 복도에서나 통학하는 버스 안에서나 딱 한 명씩 마주 칠 때마다 주저없이 주먹을 날리든지, 발로 차든지, 버스에서 밀어내 버리든지 하였다.
두세 명 그렇게 마주치고 나니, 그들 사이에 소문이 났는지 그 아이들은 항상 몇몇이 같이 다니고, 한편으로는 나와 마주치는 것을 극력으로 피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나에게 가해진 첫 번째 폭력은 끝이 났다. 그러나 나에게 그 집단 폭력은 지금도 아픈 기억이다.

두 번째 폭력은 군대에서 생겼다. 외부에서 보면 나는 아주 편한 군대 생활을 하였다.
논산훈련소 마치고 후반기 교육을 받고 군단급 이상의 부대에 파견나가 군대 생활을 하였다.
중령 아래 사병 네 명이 근무하는 파견대였다. 이등병이 따블백 메고 파견대로 갔다. 출발 직전 연락이 왔다.
부대 입구로 들어오기 전에 계급장을 병장으로 바꾸어 달고 들어 오라 하였다.
아니면 헌병대나 본부대 아이들한테 약점 잡힌다고 소위 “가라” 병장 계급장을 달고 들어 오라는 것이었다.
파견대에 도착하고 보니 총 4명의 사병 중 두 명은 며칠 내로 제대한다고 한다. 그리고 내 뒤로도 신병 두 명이 한두 달 내로 보충이 된다 하였다.
그리고 두명의 병장이 제대하고 그리고 얼마 후 신병 두 명도 도착하였다. 나는 파견대에 도착한 지 두세 달 만에 서열 두 번째가 되었다.
그 전까지 점잖던 김병장이 최고참이 되고 나니 밤마다 조금씩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대학까지 졸업하고 나이도 지보다 많은 나를 상대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웠던지, 처음에는 주로 신병 두 명만 괴롭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좀 이력이 쌓이니까 간혹 단체 기압에 나까지 불러내 각종 폭력을 행사하였다. 그렇게 점차 횟수와 가혹도가 증가되었다.
여섯 달간 실컷 두들겨 맞았다. 이 놈이 제대할 때까지 아직 여섯 달이 더 남았는데, 도저히 더 맞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더욱이 비인간적인 수모를 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내가 혼자 야근하는 시간에 두명의 신병을 불렀다.
“내일 야근하는 김병장과 이야기를 좀 할 것이니, 혹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자는 척하고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마!”
그리고 다음 날 야근하는 김병장을 찾아 갔다. 긴히 할 말이 있다 하고 졸병들 깨니 밖에서 이야기 좀 하자고 하였다.
그래서 근무실 뒤 담배 피우는 어둠침침한 곳으로 같이 나갔다.
그리고 둘이 눈이 마주치자 말자 그때부터 넘어질 때까지 두들겨 팼다.
하루 저녁 맞은 것만큼 두들겨 팼다. 그리고 그가 넘어 졌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 했다.
“지금 일어서면 너 죽는다!”
그러니 겁이 났던지 넘어진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졸병인 내가 고참인 니를 팼으니 하극상이니 문제 삼으면 나는 남한산성에 갈 것이다.
그런데 니가 그동안 우리를 두들겨 팬 것도 사실이니 니도 남한산성에 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어차피 이 년을 군대 짠밥 더 먹어야 하지만 니는 여섯 달이면 제대하는데 제대도 못하고 남한산성에 갇히면 억울하지 않겠나?
그럴 생각이 없다면, 오늘 생긴 일은 니하고 내하고만 알고 넘어가자. 니가 제대할 때까지 깍듯이 고참 대우해주겠다.
단 다시는 아무도 때리지 마라!”
그러니 누워 있던 놈은 슬그머니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 씻고 근무실로 들어갔다.
그 후 그는 제대할 때까지 조용히 있다가 제대했다.
그로부터 몇 십년 후 한국 군대에서 가혹 행위로 졸병이 사망한 소식을 접하였다.
그 때 그 고참을 가만 두었다면 그 고참도 거의 짐승으로 변해 우리를 더 괴롭혔을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그 고참이 가한 폭력과 가혹행위가 생각 날 때마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잔인한 동물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경험에 의하면 위력을 통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사실 심신이 대단히 취약한 자들이다.
즉 폭력 사용에 대한 통제력이 없다는 뜻이다. 고로 공격력도 또한 약한 자들이다.
이렇게 심신이 취약한 자들이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다. 피해자에게 몸과 마음을 평생 아프게 할 수 있다.
운좋게 혼자서 나름 해결한 나도 그 후 40여년간 가슴이 아팠다. 그러니 대책없이 당한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가슴에 멍이 들었을까?
얼마나 억울하였을까? 얼마나 서러웠을까?
이러한 폭력이 없는 여유로운 세상이 보고 싶다. 이러한 폭력에 가차없는 징벌이 가해지는 공정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러한 세상이라면 피해자는 혼자서라도 상처받은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가해자의 사과도 가해자의 징벌도 해결하지 못한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는 고스란히 피해자 혼자 몫이다.
가해자는 용서를 받기 위한 사과를 하지 말고 초래한 아픔에 심심히 사과해야 한다.
지우기 힘든 화상 흔적처럼 오래동안 가라앉지 않는 아픔과 상처에 고개를 깊이 숙여야 한다.
그리고 가해자는 피해자를 해친 활동 공간에서 다시는 눈에 띄지 않게 격리되어야 한다.
배구장에서 해쳤으면 가해자는 배구를 다시 하면 안 된다. 축구장에서 해쳤으면 가해자는 공을 다시 찰 기회가 주어지면 안 된다.
왜냐 하면 피해자는 배구를 떠났고, 피해자는 축구를 떠났기에 그들의 아픔이 그기에 있다. 그것은 징벌이기 이전에 치유의 출발점이다.
*남한산성: 군인 형무소가 있다고 함.
실제로 군에서 감방을 간 적이 없기에 실제로 남한산성에 군인 형무소가 있는지 확인이 안 됨.
이상 펌글이었습니다.
짤은 무용과 출신 아프리카 BJ


짤이 아주 좋습니다,, 우량주네요
성괴도 아니고 건강미가 있죠^^
몰입감있게 잘 읽었습니다..단체로 폭력은 아니더라도 저런 경우가 있는데 이 글처럼 멋지게 풀어가났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요..아쉽
글쓴이가 검도를 해서 어느정도 맞짱에 자신감이 있었더라구요 ㅎ
짤도 감상하고 글도 읽어보세요^^
처자 비제이명이 모에용?
글 따로 짤 따로 퍼온건데 처자이름까진 안나와 있더군요 ㅎㅎ
네? 누가 무슨 말을요??
저 퍽킹김치년 트월킹이역겹네
역시 글로벌 스님 전문용어 투척하시네요^^ Twerking!
성불하십시요~
트월킹할려면 이정도 궁딩이는되야죠 ㅋㅋ
찰집니다요 ㅎㅎㅎ
하여간 몰려다니면서 패거리 쪽수로 폭력 행사하는 새끼들은 다 1:1로 잡아 족쳐야 됨. 다이다이로 맞짱까면 좆도 아닌 것들. 좀 세보이는 쉐이는 술 한잔 하자고 꼬셔서 먹이고 방심할 때 기습으로 좆나 패대기쳐버리면 됨, 남을 괴롭힌 새끼들은 묻고 따블로 당해봐야 정신차리지.
그런짓하면 한국에서는 징역살이함
이태원클라쓰참고하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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