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양반 인구가 급증합니다 애를 많이 나아서가 아니라 몰락한 양반 족보를 사서 양반 행세를 하는 가짜 양반들이 급증했기 때문이죠
외거 노비였던 개똥이 집안이 4대에 걸쳐 면천 후 부를 축적해 양반 족보를 사고 마을 유지가 되는 과정을 추적한 역사 다큐도 있었는데 재밌었습니다
조선 후기 상업의 발달과 농업생산량의 증가로 신분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건 국사 시간서도 배우는 내용인데요
그러다 보니 지금 여탑도 그렇고 대한민국에 쌍놈 조상 둔 국민이 없죠 ㅋㅋㅋ
본디 유교 성리학서 선비의 덕목은 식탐등 욕망을 멀리하고 근검 절약 겸손인데 그런 선비가 뒤진 후 제사에 잔칫상을 올렸다? 앞뒤가 안맞죠 고인 능욕도 아니고ㅋ
그간 참느라 고생했소~ 보는 사람 없으니 마음껏 드시오~ 뭐 이런건가요?
그보단 성공한 노비 개똥이네 집안의 4대 후손이 그간의 노비 조상들의 노고와 못먹고 아끼고 주린배로 살던 조상들 모습에 눈물 흘리며 부디 저세상에선 마음껏 드시라며 진수성찬을 올리기 시작했다가 훨씬 설득력 있겠죠
몰랐던 사실인데 일리는 있네요. 덧붙여 밥을 먹을때 밥부터 먹으면 양반 국부터 먹으면 쌍놈이었다는 사실도 있습니다ㅎㅎㅎ
뭐...시작은 가짜 양반에서 시작했을 수 있죠. 과시하기 시작하니 양반들도 체면 때문에 따라갔겠죠. 나중에 다들 해서 시작이 뭐였는지 상관하지 않았겠죠. 다만 원래 성리학에 있는 건 과한 내용이 절대 아니라는 거. 성리학 내용도 아니면서 유교 전통인듯 말하는 건 거짓임이 팩트. 허례허식이 소속 사회 수준으로 여론이 만들어내는 나쁜 결과죠.
몰랐었네요 암튼 요즘같이 먹을거 다양하고 풍족한 시대에는 명절이라고 따로 해먹고 할 필요는 없는거 같음.
귀찮기만하고 명절날만 되면 쓸데없이 물가도 올라가고 많이 사주니까 비싸게 팔아먹는거니까
대충 근처 패밀리레스토랑 가서 밥이나 먹고 오는게 최고. 코로나때매 그것도 이젠 쉽지 않네
뭐든 마음이 기본으로..그 다음은 정갈하고 검소하게
조선 개국때 양반 비율이 전체 인구의 7% 후기에 족보 매매가 성행하며 가짜 양반들이 속출해 신분제가 혼란스러울 때도 30%가 안됐는데 나머지 2/3는 평민과 노비외 천민들이었겠죠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양반 후손 보단 2/3 차지하던 평민과 노비외 천민들 후손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들 후손이 없어요ㅋㅋㅋ 전부 지들이 ~씨 ~공파 이지랄이죠 ㅋ
그 이유는 일제강점기 신분제가 폐지되며 호적제가 실시되면서 물건이었던 노비와 그냥 성씨 없이 살던 천민들이 서류에 이름이 등재되고 세금납부하는 인으로 관리되야 하니 그들에게 성씨가 붙혀졌는데
그냥 그 마을 양반유지가 김가면 김씨로 다 쓰고 이가면 이씨로 다쓰고 이랬다네요 그러면서 동네 진퉁 양반 유지 가문의 후손은 한정적인데 시간이 흘러흘러 동네 천민들 후손들이 전부 성씨 갔다 쓴 양반네 후손입네~ 하는 것이죠ㅋ
그와중에 진퉁 양반네는 후대가 끊겨 폐가했는데 성공한 천민 후손이 대신 그 자릴 차지하며 계속 대를 이어간 일들도 많습니다 족보에 이름만 스윽 올리면 되니까요ㅋ
기원에 대해선 첨 들었지만 아무튼 제사상 문화를 매우 극혐하는 1인입니다...... 명절에 일가친척이 모이는건 그냥 고인을 추억하고 또한 바쁜 현대사회에 일년에 두번 정도 얼굴 비추고 살자 이런 의미의 명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밥도 그냥 조촐하게 일가친척 먹을 정도 차리고....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이 고생하는것만큼 불합리한 일이 없죠.
제사의 기원은 원래 고대 동이족이 중원을 차지하고 있을때 우두머리가 태산에 올라 하늘에 정성을 다해 염을 올리고 기원하는 행위였는데 후에 중화족이 동이족으로부터 중원본토를 먹고나서 자신들이 유일한 하늘의 자손이라고 각색하고 싶어서 황제들만이 유일하게 태산에 올라서 기원제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역사서에서도 그러고 일반적으로도 잘 안알려져있지만 중국의 수많은 역대 왕조(중화족이 세웠던, 이민족이 세웠던)들은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이 자신들의 나라의 정통성을 나타낸다고 뿌리깊은 믿음으로 자리하게 되어 망한 나라를 주어먹든, 신하가 황제를 죽이고 자리를 찬탈하든, 이민족이 중원을 먹든, 한족이 다시 중원을 먹든, 옥좌에 앉으면 무조건 첫번째로 하는 행사가 바로 끊임없이 태산에 올라 기원(시쳇말로 나 짱 먹었어)을 지냈는데 이게 나중에 한반도로 넘어오면서 원래는 우리 민족의 것이었던 행위라는건 잊혀지고 중국거라면 똥물도 좋다고 마셔되던 조선시대 위정자들과 유교를 숭배하는 양반들에 의해 차려지게 되었는데 문제는 역대 최초부터 시작하여 중국본토를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조선후기까지는 황제가, 왕이, 양반들이 하는 행위라고 해서 거창할거 같지만 별거 없었습니다. 차를 올리는 정도였었죠. 어떤걸 올리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정통성은 나에게 있다란걸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이리했는데 겨우 차가지고? 이럴수도 있지만 고대부터 당시까지 차문화는 동양역사에서 최고급 문화였었고 그러하기에 차를 올리는 것이 최고의 성의표시였기에 차례, 제사상에서 보이는 술따르는건 말도 안되는것이죠. 술이란건 적어도 표면적으로 지배계층 및 성리학자들에게는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흉측한 것이기에 이러한 것들은 못배우고 가난한 놈들이나 하고 자기네들은 우아하고 고상하게 차쯤은 마셔줘야 남들눈에 격조(물론 뒤에서는 밤에 국가대표급 미녀들과 수백, 수천만원짜리 술판을 벌였을테지만)가 높아보였을텐데 이건 꼭 발렌타인데이의 기원이 로마시대 발렌티노신부에서부터 유래해서 이 신부를 기리기 위해서 시작했다고 업계에서 개소리들을 하는데 실제로는 일본의 회사에서 많이 팔아먹기 위해 각색해서 홍보했는데 이게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한국에까지 전해져서 희한하게 중요한(?) 행사가 되어 해마다 여자가 있는 남자들은 어떻게 오늘 하루 충실(?)한 노예가 되어 진이 빠지냐로 골깨지는거고 여자가 없는 남자들은 남들 희희덕거리는거 보면서 솔로천국, 커플지옥을 말하는것과 매한가지인겁니다. 어쨋든 문화나 관습이란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와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그 모양을 바꾸어서 전래가 되는데 어떻게 제사나 차례를 지내든지 각자의 집안에서 충분히 감내할 수준의 불란이 안 일어날 정도로 지내고 싶은만큼 정성껏 알아서 차리는게 중요한거지, 남의 집이 어떻다느니, 무조건 나쁜거다느니 하는 모습 자체도 틀린 모습일수도 있습니다.
되버린것과 마찬가이죠.
갑오경장 노비해방때 아무거나 마음에 드는 성씨 골라서 쓰라고 함 ㅎㅎ 전부 제일 잘나가는 정통양반 성씨로 골라가짐
이거 왠지 명절에 시댁 가기 실은 페미들의 계략 ..주작 같은 냄새가 나는데요? ㅎㅎ
안동권씨나 풍산류씨 종갓집 시제 지내는거 보시면 이런 주장 못하실텐데...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까지 한 전통있는 의식인데 글쎄요..
위의 윤증선생이야 유언을 그리 남겼으니 자손들이 그리 따르는것이고
같은 문중인 파평윤씨 시제는 규모가 상당하죠...
적당한 상차림...
조상님들과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형제 가족들끼리 조촐한 식사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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