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은 호색한이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성인 여자가 아닌 10대의 소녀들을 좋아했다. 나이 든 여자들은 세상 물정에 너무 밝은 데다 순진한 맛이 없다고 멀리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일설에 의하면 유부녀를 좋아했다고도 한다. 마지막 부인 장칭도 이혼녀 출신. 마오쩌둥은 특히 교육 수준이 낮은 순박한 시골 아낙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70대 늙으막에 현지 지도 할 때 눈에 든 20대 초반의 유부녀가 있었는데, 마오쩌둥은 이름을 물어본 후 수첩에 이름을 적으며 좋아했고, 이를 본 심복 왕둥싱이 그 유부녀 남편에게 이혼을 종용하고 마오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 유부녀 사이에 사생아 몇 명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리즈수이가 쓴 <모택동의 사생활>에 의하면 마오쩌둥은 평생 자신의 성기를 손수 씻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한 번은 그의 주치의인 리즈수이가 위생 문제를 거론하자 계속 여자의 몸 안에서 씻고 있으니 상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링크 또한 마오쩌둥은 몸 자체도 잘 씻지 않았고, 하인들이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식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단, 이런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그가 샤워를 자주 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실제로는 당대 기준 평균 이상의 위생관념을 지녔기 때문에 몸을 아예 씻지 않았다는것은 후대의 과장섞인 이야기다.
마오쩌둥은 매일 새벽이나 아침마다 찬물에 몸을 담그는 냉수욕을 즐겼다. 이를 새벽 1교시라고 칭하면서 자신의 건강 비결로 삼았고, 수영도 어린시절부터 매우 즐겨했고, 나이가 들어서도 수시로 수영을 하는 등 물 자체를 좋아했는데, 문화대혁명을 앞두고 양쯔강을 횡단하는 퍼포먼스를 손수 선보였을 지경이었다. 이런걸 볼때 몸을 씻는걸 거부했던 이유는 성향이 비위생적이라기보단 매일 아침에 이미 씻고, 수영도 자주하는 데, 굳이 더 씻을 필요가 없겠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마오쩌둥의 치아 건강은 확실히 엉망이었다. 양치질을 별로 하지 않았고, 중국 차의 한 종류인 고차(苦茶)라는 것을 수시로 마셨으며, 양치질 대신 고차를 입에 머금고 가글하는 걸로 대신했다고 한다. 치아 건강은 꾸준히 나빠져서 치아와 잇몸이 변색되기까지 했다. 사실 이런 차를 이용한 양치는 비단 마오쩌둥 개인의 특성만은 아니고, 당시 물이 부족한 내륙지방에 살던 중국 농민들 사이의 전통적인 양치법이다. 애초에 마오쩌둥이 한창 나고 자랐을때는 치약이라는것이 흔한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하여튼 마오쩌둥의 치아 건강은 좋지 않았는데, 치석이나 음식물 찌꺼기가 많았고, 잇몸에 고름이 차 있었으며, 충치또한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을 귀찮아해서 치료도 잘 안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1955년에 리즈수이의 권고로 이를 하나 뽑아야만 했다. 리즈수이와 장광옌이 마오쩌둥에게 양치를 권하자 '호랑이는 양치를 하지 않고도 이가 날카로운데 양치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라는 말로 또 거부하였다. 그나마 이를 하나 뽑은 후엔 양치를 잠깐 했는데, 이마저도 며칠 못 가 그만두었다고 한다. 결국 마오쩌둥의 치아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져서 1970년대엔 이가 하도 많이 빠져서 윗어금니는 하나도 남지 않았고, 결국 마오쩌둥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은 치아가 보이지 않게 정교하게 찍혀야만 했다.
마오쩌둥은 성적으로도 왕성했는데 불륜을 저지르기도 했고, 성병의 일종인 트리코모나스 질염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마오쩌둥과 성관계를 맺은 여자들은 모두 그 병에 걸렸다. 그러나 마오의 여자들은 그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당시 중국에서 살아있는 신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숭배되던 마오쩌둥과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이나 자랑거리였던 것이다.링크 오히려 마오의 성병에 함께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일종의 훈장처럼 여겨졌다고 하니 안습. 마오에게 여자를 조달해 소개시켜주는 채홍사 역할은 그의 심복인 예쯔롱과 왕둥싱이 맡았다. 하지만 마오의 방탕하고 지저분한 성생활에 그들도 가끔씩 "우리가 이런 더러운 짓만 해야 하나?"라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왕둥싱은 마오 사후에 4인방을 실각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마오쩌둥의 주치의 리즈수이에 의하면 마오쩌둥은 죽는 순간까지 트리코모나스를 가지고 갔다고 한다. 이런 마오쩌둥의 성 생활은 1970년대 이후로 파킨슨병 혹은 루게릭병으로 추정되는 질환에 시달리면서 끝나게 된다.
마오쩌둥의 호색한 기질과 바람기는 부인들을 굉장히 불행하게 만들었다. 특히 장칭은 툭하면 외도를 하는 남편을 보고 남 몰래 울거나 화를 내는 일이 매우 잦아졌으며, 이는 그녀의 히스테릭한 성격에 날개를 달아주었으며, 결국 문화대혁명에서 잔악한 탄압으로 이어지게 된다.
새우11
새우11 · 21-01-11
머 듣기로는 무슨 향이 강하고 살균력이 강한 차를 마셨다고 하네여 그래서 충치를 관리 했겠죠 무튼 대단하네여 저라면 하루도 못살듯^^ 드러버
몰트케
몰트케 · 21-01-11
저도 이 책 봤습니다 ㅎㅎ 90년대에 고려원에서 나온 시뻘건 세권짜리로. 결론은 마오쩌둥은 또라이새끼더라구요.
말그대로 떼놈입니다. 떼놈!
중국애들 정말 안씻어요 더러운것들
근데, 정말 그래서 인지.. 면역력이 짱인가봐요... 이 더럽고, 균이 득실득실한데에서도 20 억인구이니... 살아 남은 애들은 정말 대단한거 같더라고요.
내셔널 지오그래피 보니, 오히려 청결하고 깨끗하고 의료시설 좋은곳에서의 사람들이 알레르기나 면역력이 더 뒤쳐진다는 설을 보여주기도 하더라고요.
동물들도, 똥개들이 훨씬 면역이 좋다고, 집에서 키우는 순종들보다.. 하긴 어릴적 집에서 키우던 바둑이 등등은 추운 겨울에, 마당 개집에서 잘만 자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말이냐? 유투버가 정리한 영상보고 진실로 믿으심???
마우쩌둥 관련 책이 잇다고 하잖아요
수 많은 기록과 책...그리고 영상 등이 있는데도...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화교인가??? ㅡ.ㅡ;;;;
중국 10억 인구가 한국인 처럼 매일 샤워하고 머리감고 하면
우린나라 서해가 오염된다고 하다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중국인이 더 자주 안 씻는개 우리한테는 좋다는 ㅎㅎㅎ
오~ 참신하네요. 머리를 한 방 가격 당한 느낌. ㅋㅋㅋ
마오가 트리코모나스 있었는데 치료도 거부하고 씻기도 거부하고 그냥 자연주의.... 그런 마오랑 하면 본인도 성병걸리는건데 중국 공산당에 세뇌된 여자들은 오히려 마오랑 한 물리적 증거?로 삼았다고 하니... 개판입니다
입은 똥 항아리죠
"공산화 항쟁을 하기 산에서 게릴라전 하며,,, 목욕 없이 견디셨던 마오~~" 이런 식에 중국 선전을
유튜버들이 조회수 올리려고 영상 만든 거겠죠 ㅋㅋㅋ
그리고 앞에서는 이런 식으로 선전하고
뒤에서는 뜨신물 받아서 목욕하고 고기 뜯고 십질 하고 다했겄죠 ㅋㅋㅋ
다들 알면서 ㅋㅋㅋ
저기 위에 언급한 마오쩌둥 관련책은 뭔가요?
전혀 상관없는데 갖다 붙인건가?
헛갈리네
모택동 여자랑자고 여자애들 성병 안걸린애들이 없어요 모택동도 성병때문에 죽은거나 마찬가지고요
궁금해서 나무위키 찾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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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은 호색한이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성인 여자가 아닌 10대의 소녀들을 좋아했다. 나이 든 여자들은 세상 물정에 너무 밝은 데다 순진한 맛이 없다고 멀리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일설에 의하면 유부녀를 좋아했다고도 한다. 마지막 부인 장칭도 이혼녀 출신. 마오쩌둥은 특히 교육 수준이 낮은 순박한 시골 아낙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70대 늙으막에 현지 지도 할 때 눈에 든 20대 초반의 유부녀가 있었는데, 마오쩌둥은 이름을 물어본 후 수첩에 이름을 적으며 좋아했고, 이를 본 심복 왕둥싱이 그 유부녀 남편에게 이혼을 종용하고 마오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 유부녀 사이에 사생아 몇 명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리즈수이가 쓴 <모택동의 사생활>에 의하면 마오쩌둥은 평생 자신의 성기를 손수 씻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한 번은 그의 주치의인 리즈수이가 위생 문제를 거론하자 계속 여자의 몸 안에서 씻고 있으니 상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링크 또한 마오쩌둥은 몸 자체도 잘 씻지 않았고, 하인들이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식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단, 이런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그가 샤워를 자주 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실제로는 당대 기준 평균 이상의 위생관념을 지녔기 때문에 몸을 아예 씻지 않았다는것은 후대의 과장섞인 이야기다.
마오쩌둥은 매일 새벽이나 아침마다 찬물에 몸을 담그는 냉수욕을 즐겼다. 이를 새벽 1교시라고 칭하면서 자신의 건강 비결로 삼았고, 수영도 어린시절부터 매우 즐겨했고, 나이가 들어서도 수시로 수영을 하는 등 물 자체를 좋아했는데, 문화대혁명을 앞두고 양쯔강을 횡단하는 퍼포먼스를 손수 선보였을 지경이었다. 이런걸 볼때 몸을 씻는걸 거부했던 이유는 성향이 비위생적이라기보단 매일 아침에 이미 씻고, 수영도 자주하는 데, 굳이 더 씻을 필요가 없겠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마오쩌둥의 치아 건강은 확실히 엉망이었다. 양치질을 별로 하지 않았고, 중국 차의 한 종류인 고차(苦茶)라는 것을 수시로 마셨으며, 양치질 대신 고차를 입에 머금고 가글하는 걸로 대신했다고 한다. 치아 건강은 꾸준히 나빠져서 치아와 잇몸이 변색되기까지 했다. 사실 이런 차를 이용한 양치는 비단 마오쩌둥 개인의 특성만은 아니고, 당시 물이 부족한 내륙지방에 살던 중국 농민들 사이의 전통적인 양치법이다. 애초에 마오쩌둥이 한창 나고 자랐을때는 치약이라는것이 흔한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하여튼 마오쩌둥의 치아 건강은 좋지 않았는데, 치석이나 음식물 찌꺼기가 많았고, 잇몸에 고름이 차 있었으며, 충치또한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을 귀찮아해서 치료도 잘 안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1955년에 리즈수이의 권고로 이를 하나 뽑아야만 했다. 리즈수이와 장광옌이 마오쩌둥에게 양치를 권하자 '호랑이는 양치를 하지 않고도 이가 날카로운데 양치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라는 말로 또 거부하였다. 그나마 이를 하나 뽑은 후엔 양치를 잠깐 했는데, 이마저도 며칠 못 가 그만두었다고 한다. 결국 마오쩌둥의 치아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져서 1970년대엔 이가 하도 많이 빠져서 윗어금니는 하나도 남지 않았고, 결국 마오쩌둥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은 치아가 보이지 않게 정교하게 찍혀야만 했다.
마오쩌둥은 성적으로도 왕성했는데 불륜을 저지르기도 했고, 성병의 일종인 트리코모나스 질염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마오쩌둥과 성관계를 맺은 여자들은 모두 그 병에 걸렸다. 그러나 마오의 여자들은 그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당시 중국에서 살아있는 신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숭배되던 마오쩌둥과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이나 자랑거리였던 것이다.링크 오히려 마오의 성병에 함께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일종의 훈장처럼 여겨졌다고 하니 안습. 마오에게 여자를 조달해 소개시켜주는 채홍사 역할은 그의 심복인 예쯔롱과 왕둥싱이 맡았다. 하지만 마오의 방탕하고 지저분한 성생활에 그들도 가끔씩 "우리가 이런 더러운 짓만 해야 하나?"라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왕둥싱은 마오 사후에 4인방을 실각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마오쩌둥의 주치의 리즈수이에 의하면 마오쩌둥은 죽는 순간까지 트리코모나스를 가지고 갔다고 한다. 이런 마오쩌둥의 성 생활은 1970년대 이후로 파킨슨병 혹은 루게릭병으로 추정되는 질환에 시달리면서 끝나게 된다.
마오쩌둥의 호색한 기질과 바람기는 부인들을 굉장히 불행하게 만들었다. 특히 장칭은 툭하면 외도를 하는 남편을 보고 남 몰래 울거나 화를 내는 일이 매우 잦아졌으며, 이는 그녀의 히스테릭한 성격에 날개를 달아주었으며, 결국 문화대혁명에서 잔악한 탄압으로 이어지게 된다.
머 듣기로는 무슨 향이 강하고 살균력이 강한 차를 마셨다고 하네여 그래서 충치를 관리 했겠죠 무튼 대단하네여 저라면 하루도 못살듯^^ 드러버
저도 이 책 봤습니다 ㅎㅎ 90년대에 고려원에서 나온 시뻘건 세권짜리로. 결론은 마오쩌둥은 또라이새끼더라구요.
쩌둥짱~ 참새 씨발라먹은 머저리
원래 짱깨들이 안 씻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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