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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가루지기전 5. 21~25 (원작:최정주)

    가루지기전 5화입니다.

    즐감하셔요. . .

     

     

    "그만 울음을 그치시요. 운다고 죽은 성님이 살아 오시겄소? 왕초 성님이 너무 무리를 했는갑소. 여시골이 들썩거리도록 시끄럽게 방사를 허시드니, 천하장사인들 남아나겠소? 

     

    이레라도 버틴 것이 다행이요. 내가 성수님의 감청소리에 저러다 우리 성님 죽제, 죽제하고 가심이 오마조마했소이다."

    "아이고, 아주버님. 이 년은 이제 어찌 산다요? 동냥치 서방도 서방이라고 서방님만 믿고 살았는데, 이 년은 이제 어찌 산다요? 나도 죽을라요. 서방님을 따라 나도 죽을라요."

    "성수님이 무신 열녀라고 성님을 따라 죽겄소? 씨잘데기 없는 소리 마시고, 어떻게든 살아갈 방도를 생각해보시요. 설마한들 성님이 돌아가셨다고 성수님을 내치기야 하겠소? 우리 동생들이 성님 몫까지 위해드릴테니, 걱정마시고 살으시요."

    넙죽이가 크게 인심이나 쓰는듯이 그리 말할 때였다.  촐랑이와 꼬지가 거적대기 한 장과 지게를 가지고 왔다.


    꺼이꺼이 울던 나머지 판쇠와 말뚝이가 들어와 뻣뻣하게 굳어있는 왕초를 거적대기에 둘둘말아 팔 다리를 불끈 들어 지게 위에 얹었다. 

     

    그 중 덩치가 크고 힘깨나 쓸만한 껄떡이가 지게를 졌다.

    "어노, 어노, 어디 가나? 어노."  넙죽이가 중얼중얼 타령가락으로 흥얼 거렸다.


    "북망산이 멀다더니, 앞산 뒷산이 북망이로세. 어노 어노 어이가리 넘자, 어노."  나머지 동생들이 따라서 흥얼거렸다.

     

    사람사는 마을에서 사람들이 듣고 눈치라도 챌까 싶어 입속으로만 부르는 향도가가 햇살바른 양지 쪽을 향해 가만가만 올라갔다.

    "이 년은 어찌 산다요? 이 년도 데리고 가시요, 서방님."  옹녀가 넉두리를 늘어놓으며 따라갔다.



    "여그다 묻어 드리자. 멀리 갈 것이 뭬 있느냐? 땅 한 뙈기 가진 것이 없으니, 어차피 남의 땅에 도둑질하듯 묻어야하는데, 산 임자가 알고 몽둥이 들고 쫓아오기 전에 얼른얼른 묻어 드리자."

    넙죽이가 양지바른 산모퉁이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반 시각 남짓 땀을 흘렸던 껄떡이가 얼른 지게를 땅에 내려 놓았다. 

     

    각설이들이 땅을 파는 동안에도 옹녀는 이 년도 데리고 가시요, 나 혼자는 못 사요, 하고 꺼이꺼이 훌쩍훌쩍 울음을 울었다.

    왕초 박달근을 평장으로 묻고 행여 홍수에 떠내려 갈세라 여섯 동생이 힘을 합쳐 큼지막한 돌덩이 하나를 가져다 덮은 다음 각설이 여섯 동생이 나란히 서서 절 두번 올리는 걸로 왕초의 장례가 끝났다.

     

    그때까지도 꺽꺽꺽 서럽게 울고 있는 옹녀를 넙죽이가 팔을 붙들어 일으켰다.

    "가십시다, 성수님. 왕초 성님은 다시는 오지 못할 북망으로 갔소. 비록 동냥질로 묵고는 살았을 망정 남한테 해꼬지 한번 않고 살았으니, 남의것이라고는 고린 땡전 한 푼도 도둑질한 일이 없으니, 극락으로 가셨을 것이요."

    못 이긴 체 몸을 일으키며 옹녀가 하소연을 했다.

    "서럽다, 서럽다해도 이리 서러운 꼴은 내 첨이요. 허망하다, 허망하다 해도 이리 허망한 꼴은 내 또 첨이요. 아무리 파리 목숨보다 못한 것이 사람 목숨이라고는 해도 이리 허퉁스러울 수가 있다요?

     

    아주버님. 못 살 겄소. 내가 못 살겄소. 나 혼자서는 못 살것소. 아주버님들이나 내려가시요. 나 혼자 서방님께 투정이라도 부리다 내려갈라요."

    옹녀가 몇 걸음 걷다가 털썩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아요, 성수님의 맘얼 내가 왜 모르겄소. 하늘이 무너진 것 같겄제요. 땅이 꺼진 것 같것제요. 허나 어쩌겄소. 산 사람이나 살아야지요. 나머지 동생들이 성수님을 잘 뫼실터니, 그만 울고 가십시다."

    넙죽이가 팔장을 바싹 끼어 잡아 다녔다. 

     

    기운이 없어 못 걷겠다는 듯, 서러워서 못 걷겠다는 듯, 옹녀가 몸을 넙죽이의 옆구리에 기대고 비칠비칠 걸어갔다. 

     

    넙죽이 놈이 하늘을 향해 흐 웃고는 슬쩍슬쩍 팔꿈치로 옹녀의 가슴패기를 쥐어 박았다.

    '흐흐흐, 요 놈 좀 보소. 행실만 동냥친 줄 알았더니, 맘보도 동냥칠세. 명색이 지 놈이 큰 성님으로 뫼시던 왕초의 장례를 치루고 내려오면서 내 몸을 탐하네.'

    그러나 그걸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옹녀가 더욱 서러워 못살겠다는 듯, 어찌 살꼬, 하늘같은 서방님을 잃고 내 어찌 살꼬, 하며 얼굴을 넙죽이의 어깨에 묻었다가, 돌뿌리라도 찬 듯 털썩 주저 앉았다가, 못 사요, 나넌 인자 못 사요, 하며 가슴패기를 넙죽이의 어깨죽지에 비벼댔다.

    갑자기 넙죽이의 걸음이 어기적거리기 시작했다.  옹녀가 속으로 흐 이놈봐라, 생각하며 흘끔 사내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 보아서 그런지 넙죽이의 거무튀튀한 얼굴이 벌겋게 닳아올라 있었다.

     

    이날 밤이었다.  피박을 다녀 온 각설이 여섯명이 모닥불가에 모였다.  그 중 나이가 많은 넙죽이가 말했다.

    "큰 성님이 돌아가셨으니, 새로 왕초를 뽑아야하겠구나. 느그덜 생각은 어쩐지 각기 말을 혀보그라."

     

    "아, 뽑고말고헐 것이 멋이다요? 넙죽이 성님이 응당 왕초가 되어야지요."  촐랑이가 촐랑거리며 나섰다.

    "다른 놈들은 어찌 생각허냐? 이 몸이 왕초가 되어도 상관없겠느냐?"

    넙죽이가 불빛에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다른 각설이들을 둘러 보았다. 

     

    아무도 반대하고 나서는 놈은 없었다.

    "하면, 느그들 뜻이 그런 걸로 믿고 이 몸이 왕초를 맡으마. 글고, 성수님은 어찌해야 쓰겄느냐? 하늘이 무너진듯 땅이 꺼진 듯 산같은 슬픔에 잠겨계신 성수님을 앞에 놓고 이런 말하기는 그렇다만, 성수님은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아, 내치든지 한 식구로 살든지 두 가지 방도 밖에 더 있소? 왕초 성님이 알아서 결정을 허시요."

    이번에는 판쇠가 한 마디 하고 나섰다.

    "그러씨요, 왕초성님. 왕초 자리도 성님이 물려받았으니, 기왕이면 성수님의 지아비 자리도 물려받으시요. 아, 우리가 안 그랬소?

     

    왕초 큰 성님이 빨던 돼지뼈다구를 둘째 성님이 물려받아 빨고, 둘째 성님이 빨던 돼지뼈다구를 세번째 성님이 물려받아 안 빨았소?"

    껄떡이 놈이 옹녀와 넙죽이의 눈치를 살피며 한 마디 불쑥 던지고는 내 말이 어쩌냐는 듯이 형제들을 둘러 보았다. 

     

    넙죽이가 그래도 되겠소? 하는 눈빛으로 옹녀를 돌아보았다.

    "세상에 그런 법은 없소. 내가 서너달 전까지만해도 오랑캐 나라에서 살았는데, 오랑캐 놈들 중에는 그런 놈도 있는 갑습디다. 큰 형이 데리고 살다 죽으면 작은 형이 형수님을 데리고 한 이불 덮고 자는 싸가지 없는 짓거리도 한다고 그럽디다.

     

    허나, 여그는 조선 땅이 아니요? 동방의 예의지국이라고 하는 조선 땅이 아니요? 어찌 그럴 수가 있겠소? 삼우제나 지내고 나면 내 발로 떠날 것이니, 내 걱정은 말고 이녁들끼리 잘들 사시요."

    옹녀가 싸늘한 낯빛으로 말하자 넙죽이가 입맛을 쩝 다셨고, 촐랑이가 나섰다.

    "성수님도 참, 우리가 성님 동생하고 살지만, 피 한방울 안 섞인 남남이요. 큰 성님이 모시고 살던 성수님을 새로 왕초가 되신 넙죽이 성님이 모시고 산다고해서 큰 허물은 아닐 것이요?

     

    말을 들어보니, 성수님의 처지도 난감한 모양이던데, 우리가 사대부 양반가문도 아니고, 체면 따질 것이 멋이다요? 우리끼리 눈감고 그냥 살면 되지요. 안 그렇소? 성님들."

    촐랑이 놈이 말끝에 형제들을 둘러보았다.  옹녀가 저런 싸가지 없는 놈 같으니, 하는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그때였다. 촐랑이 놈의 찢어진 바지 사이에서 시커먼 몽둥이 하나가 불끈 일어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왕초 박달근이 것보다 두껍고 긴 물건이었다.  옹녀가 침을 꿀꺽 삼키는데, 넙죽이가 말했다.

    "우리가 아무리 동냥치일망정 사람으로 지켜야할 도리가 있는 것이니라. 아직 큰 성님의 시신이 식기도 전인데, 어찌 성수님을 탐할 마음을 먹겠느냐? 하늘에서 천벌이 내릴 짓이니라.

     

    성수님, 걱정하지 말으시고 편할대로 하시요. 여그서 사시것다면 성수님으로 모실 것이고, 가시겄다면 언제든지 보내주겄소. 그러니 마음편히 움막에 가서 쉬시제요."

    "알것소, 왕초. 아직은 내가 어찌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소. 이 년은 가서 잠을 잘터이니, 형제분들끼리 상의를 더해보시던지요."

    옹녀가 몸을 일으키며 촐랑이 놈을 흘끔 바라보았다. 

     

    놈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놈이 배시시 웃으며 올려다 보았다.

    "쳐 죽일놈같으니라구. 끝까지 넘정거리네."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고 옹녀가 박달근의 냄새가 질펀하게 배어있는 움막으로 돌아왔다.

    "하이고, 내 팔자야. 이리 허망하게 살것이면 애당초 내 목의 목매를 무엇하러 거두었을꼬? 겨우 이레 살자고 그 분란을 떨었을까."

    한숨을 푹 내쉬며 잠자리에 들었으나, 머리 속이 명경 속처럼 맑아졌다. 온갖 생각들이 물흐르듯 흘러갔다.

    "어찌 살꼬. 내 어찌 살꼬. 여기 움막에서 그냥저냥 살아볼까? 살다가 정 생기는 사내가 있으면 그 사내를 서방으로 맞아 그럭저럭 살아볼까? 그러다 그 사내조차도 고태골로 가버리면 어쩐다지? 차라리 여섯 사내를 모두 서방으로 모시고 살까?

     

    한 사내만 데리고 살다가 그 사내도 고태골로 가면 안 되니까, 오늘은 넙죽이 서방님, 내일은 껄떡이 서방님, 그렇게 번갈아 움막에 들이며 살아볼까. 하이고, 남새시러버라. 내가 별 시덥지 않은 생각을 다하는구나. 짐승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옹녀가 혼자 흐 웃다가 눈을 감았다. 

     

    마음고생이 심해서일까. 맑디 맑은 머릿속과는 달리 눈을 감자 이내 잠이 쏟아졌다. 

     

    천근의 무게로 내리누르는 잠을 어쩌지 못해 옹녀가 깊디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온갖 험상궂은 꿈들이 옹녀의 꿈 속을 찾아왔다가 사라졌다. 

     

    험악한 꿈 속에서 벗어난듯 싶으면 다시 새로운 꿈이 찾아왔다.

     

    골샌님같던 서방님이, 우락부락한 오랑캐 사내들이, 왕초 박달근이 번갈아서 몸뚱이를 타고 놀다가 갔다.

    옹녀가 끙끙 앓다가 눈을 번쩍 떴다.  밖은 아직 캄캄한 어둠이었다. 내가 왜 잠이 깨었지?


    곰곰이 생각하던 옹녀는 아랫배가 더부룩히 차올라 있는 것을 느끼고는 거적대기를 쳐 들고 움막 밖을 내다보았다. 

     

    저만큼 보이는 아래 움막에서 인기척은 없었다.  하늘 가운데 훌쭉 이즈러진 달이 떠 있었다.

    '저 달이 배가 불룩했을 때 내가 왕초 서방님을 만냈는데, 달이 채 이즈러지기도 전에 사별을 했구나. 참으로 허망한 인생이 아닌가?'

    옹녀가 중얼거리며 움막을 나왔다. 아랫배는 여전히 더부룩했다.

     

    어제밤에는 새벽녁에 잠이 깬 옹녀가 소피가 마렵다고 하자 박달근이 따라나와 함께 소피를 보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인 것이었다. 

     

    그것조차도 속이 상한 옹녀가 여나믄 걸음 걸어가 엉덩이를 까고 앉아 소피를 보았다.

    멀리서 닭이 울고 있었다.  이제 곧 날이 샐 것이었다.  움막을 잠시 내려다 보던 옹녀가 어제 왕초를 묻은 곳을 향해 걸어갔다.

     

     

    어차피 남든지 떠나든지 오늘 결단을 내려야했다.

     

    각설이들의 움막에 남아 넙죽이의 지어미 노릇을 하면서 살든지, 아니면 죽은 왕초의 성수님으로 살든지, 그것도 아니면 여섯 서방을 거느리고 살든지, 각단을 내야했다. 그 일을 박달근의 무덤 앞에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옹녀가 반 시각 남짓을 허위허위 올라가 박달근의 무덤 앞에 덜프덕 엎으러졌을 때에는 날이 번히 밝아오고 있었다.

    '서방님, 이놈의 돌덩이가 얼매나 무거웠소? 허나 홍수에 떠내려가는 것 보담은 안 났겄소? 산 주인한테 들켜가지고 파헤쳐지는 것보담은 안 났겄소? 서방님의 팔자가 살아서도 무거운 짐, 죽어서도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할 것을 어쩌겠소? 편히 주무시요 .이승에서처럼 고생하지 말고 편안히 사시요.'

    혼자 중얼거리다보니 옹녀는 새삼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가슴으로는 슬프지 않은데, 눈이 먼저 알고 눈물을 질금질금 내보내는 것이었다. 

     

    일단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자 없던 슬픔이 생겨나 어느새 목이 컥컥 막히는 울음을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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