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구려시대의 위인 : 을파소
을파소는 191년에 고구려의 국상이 되어 12년간 고국천왕과 산상왕을 섬기며 충신으로서 고구려의 업적에 이바지 했습니다.
초야의 선비로 묻혀 있던 을파소는 당시 재상들의 추천을 받아 벼슬살이에 나설 때, 기왕 줄 자리 높게 달라고 당당히 말한 배짱이 두둑한 인물이였다고한다. 당시 고구려는 동명과 유리로 이어지는 개국시대를 넘어서 대무신왕과 국조왕에 이르러서야 나라의 기틀을 잡았고 차대왕과
신대왕을 거쳐 고국천왕대에 이르러 왕조의 힘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고국천왕 12년에 어비류와 좌가려가 나라의 권력을 틀어쥐고 함
부로 권세를 휘둘렀는데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고국천왕이 이를 제제하려 하자 이들은 반란을 일으켜 나라를 위험케 하였습니다. 허나 결국
병세의 열세함에 반란은 진압되고 이들은 목이 베이고 그 일당들은 토벌되거나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지만 이일을 통해서 권력을 탐하지않고
부국강병을 이루어줄 명재상을 필요로 했는데 여러 재상들의 추천을 받아서 등극하게 된것이 을파소 였습니다. 을파소의 업적중 가장 큰것은
강력한 개혁의 드라이브를 걸어서 진대법을 완성하고 나라의 어려움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진대법이란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에게 나라에서
봄에 곡실을 빌려주고 가을에 돌려받는 빈민 구제법인데 이 제도가 백성들에게는 목숨을 구하고 살아갈수 있는 복지제도 였으나 귀족 신하들
에게는 그동안 백성들을 자신들의 식량과 재산으로 노비와 사병으로 만들던 권력의 큰 힘을 빼버리는 개혁법이라 반발이 심했습니다. 파벌에
휩싸이지 않고 왕권만을 믿고 강하게 진대법을 통한 개혁 추진의 힘을 실었던 을파소는 마침내 귀족들의 숙청과 회유로 왕권을 강화하고 부국
강병의 시대를 고국천왕과 산상왕 2대를 걸쳐서 틀을 다지게 된다.
2. 을파소에 대한 개인적 의견
고구려를 대표할 만한 명법인 진대법은 을파소의 손을 통해서 이룩되었고 을파소는 권력의 최중심에 서있었지만 개인적인 권력욕 보다는 나라
를 먼저 위한는 마음으로 권력을 사용했으며 이러한 충심과 애국심이 고국천왕과 산상왕대에까지 이르는 두 왕의 신임을 잃지 않고 국가를
발전적이고 건강한 부국강병의 시대로 만드는 기틀이 되고 발전의 밑거름이 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정치를 보면 좌우 진영으로 나뉘어서
권력을 쟁취하고 자신들과 측근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권력 유지에만 몰두하는 썩은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을파소와 같이 대한민국을 한바탕
뒤집고 개혁의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수 있는 인물이 나와야 점점 고인물이 되어서 발전이 더뎌지는 대한민국을 바꿀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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